철강업계, 중국 덤핑·기술격차 사이서 생존 기로
포항제철소 51년 만에 첫 적자··· 100조 시대 막 내려
8100억 수소환원제철 투자·4000억 보증상품으로 철강 지원
정부 구조조정안 이달 말 발표, 고부가가치 전환 열쇠

한국 철강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포항제철소가 창립 5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소식은 산업 전반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중국의 무차별 저가 공세와 일본의 초정밀 기술 추격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국내 철강업계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국 철강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포항제철소가 창립 5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소식은 산업 전반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중국의 무차별 저가 공세와 일본의 초정밀 기술 추격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국내 철강업계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국 철강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 포항제철소가 창립 5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소식은 산업 전반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중국의 무차별 저가 공세와 일본의 초정밀 기술 추격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국내 철강업계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강재로의 전환이 사실상 유일한 생존 해법으로 떠오르면서 이달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할 민관 합동 구조조정 방안이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물보다 싼 중국 철판”··· 덤핑 공세에 무너지는 수익성

2024년 한국 철강업계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주요 철강업체 140개사의 매출액은 96조5415억원으로 전년 대비 6.7% 감소하며 100조원 시대가 막을 내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익성 급락이다. 영업이익은 44.6% 급감한 2조5936억원, 당기순이익은 51.9% 감소한 1조361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2.7%는 제조업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의 주범은 중국의 무차별 덤핑 공세다. 2024년 중국의 철강 수출량은 1억 1100만t으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업계에서는 “물보다 싼 중국 철판”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가격 파괴가 심각하다. 중국산 후판의 경우 올해 10월까지 수입량이 115만7800t으로 지난해 전체 수입량을 넘어섰고, 가격은 국내산 대비 20%까지 저렴하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72조6880억원으로 전년 대비 5.8% 감소했으며, 영업이익률은 2021년 12.1%에서 2024년 3.0%로 3년 연속 큰 폭 하락세를 보였다. 현대제철 역시 매출원가율이 94.68%에 달해 4개 철강사 중 가장 높은 원가 부담을 안고 있으며, 매출액도 2022년 23조6669억원에서 2024년 18조6176억원으로 2년간 21.4% 감소했다.

국내 조강생산량은 2023년 6670만t에서 2024년 6360만t으로 4.6% 감소했고, 2025년 철강 수요는 2015년 대비 1100만t, 2008년 대비 1200만t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철강산업 종합 경쟁력에서 한국은 85.7점으로 일본(92.8점), 미국(90.5점), 독일(89.7점)에 이어 5위에 그쳤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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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티 철강, 생존 위한 마지막 카드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한국 철강업계가 찾은 돌파구는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철강이다. 정부는 이달 말 발표할 구조조정 방안을 통해 저부가가치 제품 감산과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전체 철강 생산량은 10~2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석유화학업계와 달리 인위적인 고로·전기로 폐쇄는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용 초고강도강 분야에서 한국 철강업계는 기술적 우위를 확보했다. 포스코의 기가스틸은 1㎟당 100kg 이상을 견디는 초고강도 강판으로 전기차 경량화의 핵심소재다. 기존 대비 차량무게를 26% 줄이면서도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차체용 알루미늄 대비 3배 이상 강하다. 현대제철의 1.8GPa급 핫스탬핑강은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한 기술로, 기존 1.5GPa 대비 인장강도를 20% 향상시켜 10%의 경량화를 가능하게 했다.

전기차 시대 필수소재인 전기강판에서도 한국이 앞서고 있다. 포스코의 하이퍼 엔오(Hyper NO) 무방향성 전기강판은 일반 전기강판 대비 에너지 손실을 30% 줄여 전기차 주행거리를 5km 연장시킨다. 두께 0.1mm까지 생산 가능한 이 기술은 포스코가 국내 유일하게 보유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 철강사만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초고난도 기술이다.

액화천연가스(LNG)·암모니아 운반선용 특수강종도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포스코는 LNG 저장탱크용 고망간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했다. 이는 기존 9% 니켈강보다 30% 저렴하면서도 -196℃ 극저온에서 우수한 인성을 유지한다.

친환경 제철공정, 미래 산업 판도 바꾼다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한 친환경 제철 공정에서도 한국 철강업계가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포스코의 하이렉스(HyREX)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탄소 배출을 85~95% 감축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하이렉스는 포스코 고유 기술인 'FINEX 유동 환원로 기술'과 그룹사 SNNC의 '전기 용융로 기술'을 결합한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 기술로, 저품위 분광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원료 제한이 없으며 반응기별 온도 제어가 가능해 열공급에 유리한 특징을 갖고 있다. 현대제철의 전기로-고로 복합공정은 탄소 배출을 약 20% 저감한 철강제품을 생산하며, 광양제철소에는 연산 250만t 규모의 대형 전기로 공장을 2026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에는 여전히 경제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있다. 2050년에도 고로-전로 공정 대비 철강 1t당 약 30만원의 추가 비용이 예상된다. 경제성 확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 가격 하락, 정부의 그린수소 생산 지원정책, 저탄소 철강제품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

정부는 중국산 철강 덤핑에 대응해 적극적인 무역구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24년 중국산 후판에 대해 최대 38%의 잠정 덤핑방지 관세를 부과했으며, 스테인리스강 후판에는 21.6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저가 공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5년이 한국 철강산업 존폐를 가를 골든타임”이라며 “범용재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제품이 아닌 기술과 가치를 파는 '소재기술 기반 산업'으로의 전환만이 생존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한국 철강업계가 중국의 저가 공세를 뚫고 일본의 기술 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철강을 통한 질적 차별화가 성공할지 향후 5년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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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AI·수소환원·통상지원 병행 ‘총력 대응’

산업부가 글로벌 공급과잉과 미국 무역 규제, 안전사고 등 복합 위기를 겪고 있는 철강산업 지원에 본격 나섰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19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된 포항을 찾아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와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를 점검하고, 주요 철강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어 정책 지원 방향을 논의했다.

김 장관은 현장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제철공정과 근로자 안전관리 체계를 직접 살펴보며 “AI 접목을 통한 생산 효율성 강화와 중대재해 예방이 산업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또 세계 최초로 추진 중인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8100억원 규모로 본격화되는 점을 언급하며 “저탄소 철강재와 특수탄소강 같은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정부가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철강업계가 직면한 대외 통상환경 대응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김 장관은 “대미 철강 관세 면제를 강하게 요구했으나 수용이 쉽지 않았다”며 업계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미국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불공정 수입재 대응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철강기업의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금융권·정책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4000억원 규모 ‘철강 수출공급망강화 보증상품’ 신설 계획도 밝혔다.

국내외 공급과잉 문제와 지역경제 대응도 논의됐다. 김 장관은 “품목별 대응 방향을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며 “철강산업특별법 발의와 관련해 핵심 정책과제들이 국회를 통해 입법화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한국철강협회가 산업 위기 대응과 저탄소·고부가 전환, 안전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했고, 업계 대표들은 안전관리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산업부는 올해 초 출범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TF’를 통해 전문가·업계 의견을 종합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공급과잉 대응, 저탄소·고부가 제품 전환, 불공정 수입재 방어, 안전관리 및 상생협력 강화 등을 담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는 김 장관의 이번 현장 방문을 계기로 정부가 AI·그린철강 투자와 통상·금융 지원을 통해 미래 경쟁력 강화에 나서려는 신호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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