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충격파, 철강업계 ‘전례없는’ 리스크 관리 돌입
복잡한 하청구조 기반 철강산업, 원청 책임 강화로 경영 부담 가중
생산·공급 차질 등 제조업 전반 파급효과 우려도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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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개 협력사와 모두 교섭해야 한다고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한 철강업계 관계자가 내뱉은 한숨 섞인 탄식이다. 법 통과 단 하루 만에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원청 교섭을 요구하며 출정식을 열면서 철강업계의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이 됐다.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이 일제히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24시간 쉬지 않는 연속공정과 200여 개 협력사가 얽힌 복잡한 생태계를 가진 철강산업에 원청 사용자 책임 강화와 쟁의 범위 확대라는 ‘이중 폭탄’이 터진 셈이다.

2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까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하청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쟁의행위 범위에 포함시킨 이 법은 6개월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업계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은 법 통과 하루 만에 입증됐다. 이미 법원이 현대제철과 한화오션의 하청노조에 대한 교섭 의무를 인정한 판결을 내린 상황에서 철강업계의 우려는 가속화되고 있다.

철강 빅3, 차별화된 생존 전략 구축

포스코는 최근 산업현장 안전사고를 계기로 하청 구조 전면 재편을 포함한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발표하며 유화 기조를 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노조 탈퇴 종용 의혹으로 노사 갈등이 격화됐던 쓴 경험을 바탕으로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원 불이익 금지 서한을 발송하며 관계 개선에 나설 전망이다. 

대표이사 직속 기술전략실과 환경에너지기획실을 통해 기후변화, 탄소 규제와 함께 노사 관계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전사적 체계를 구축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제철은 지난 2021년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점거 농성 사태로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2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이 6억원만 인정하면서 손배소의 실효성 한계를 경험했다. 이에 기존 강경 대응에서 벗어나 자회사 전환을 통한 구조 개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월 1회 경영전략회의를 통한 사업부별 리스크 관리 강화와 준법경영 체계 구축으로 선제적 대응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동국제강은 1994년 국내 최초 ‘항구적 무파업’ 선언 이후 31년간 유지해 온 평화적 노사관계가 최대 강점이다. 2023년 약 1000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선제적 조치로 리스크를 최소화했으며, 이는 업계 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도 주요 철강사 중 가장 빨리 임금협상을 마무리하며 ‘상호 신뢰의 노사관계’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세아제강과 KG스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전국 각지 분산된 공장과 하청업체의 조직화 움직임에 대한 상시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4대 핵심 전략으로 리스크 최소화

국내 철강업계가 고용 구조와 노사 관계를 둘러싼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핵심 과제는 직접고용 비율을 높이고 하청 구조를 단순화하는 한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반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법적 대응 역량과 노조와의 선제적 소통 창구를 확충하는 것이다.

우선 고용 구조의 재편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단계 하청 구조가 교섭 부담을 키우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인력 구조 단순화가 추진되는 모습이다. 동국제강이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철강업계 전반에 걸쳐 ‘표준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노사 리스크를 ESG와 연결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작업장 안전 강화, 협력사 ESG 평가, 공급망 관리 체계 정비 등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분쟁을 피하는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ESG 관리가 확산되고 있다.

법적 대응 역량 강화도 경영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가 법적으로 여전히 불명확한 만큼, 노동법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사내 법무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 불확실성 속 리스크 차단의 관건으로 평가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사 문제는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체의 안정성과 직결된다”며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일수록 선제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철강업계의 고민은 단순히 한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강의 생산·공급 차질이 건설,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주력 산업 전반에 미칠 연쇄 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연속공정 기반의 장치산업 특성상 파업이 빈번해질 경우 정상적인 사업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철강 시황 악화, 미국 관세 부과 등으로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노란봉투법까지 겹치면서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노란봉투법 시행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철강업계가 구축하는 전사적 리스크 관리 전략의 성패는 국내 제조업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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