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美 전기로 제철소 8.5조 투자
기술적 과제·비용은 "부담"··· "친환경 시대, 미래 성장성에 투자"

현대제철이 오는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58억달러(약 7조8000억원)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에 건설되는 이 제철소는 원료부터 제품까지 일관 공정을 갖춘 미국 최초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로, 연간 270만t의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된다.
현대제철의 이번 미국 투자는 자동차강판 공급 현지화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초대형 프로젝트는 자동차강판 특화 제철소로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하는 원료 생산설비와 전기로, 열연 및 냉연강판 생산설비로 구성될 예정이다.
다만 현대제철의 전기로를 통한 자동차강판 생산은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명확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제성과 시장 수요라는 현실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번 대규모 프로젝트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지, 아니면 국내 철강 산업의 공동화를 촉진할 위험한 결정인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기술적 측면에서 이미 전기로를 통한 자동차강판 생산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70년 이상의 전기로 운영 노하우를 보유한 현대제철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기로 기반으로 약 100만t의 자동차강판을 생산한 경험이 있다. 2022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전기로를 통한 1.0GPa급 탄소저감 고급판재 시험 생산에 성공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또한 전기로·고로 복합공정기술을 개발해 탄소배출을 약 20% 줄인 자동차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이 기술은 고로에서 철광석으로 생산한 쇳물과 전기로에서 철스크랩(고철)으로 생산한 쇳물을 전로에서 혼합하는 방식이다.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을 생산하는 일관제철소 중 고로와 전기로를 한 공장 안에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현대제철이 현재 투자 진행 중인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는 고로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탄소저감된 자동차 고급강재인 외판재부터 초고장력강까지 생산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의 이번 투자는 국내 철강 산업 침체 극복과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 제고, 신규 고객사 확보를 위한 전략적 결정이다. 향후 미국 내 전기로 생산 체계가 안정되면 국내에도 이를 빠르게 확대 적용해 탄소중립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글로벌 압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오는 2026년 도입되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은 철강업계에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철강시장이 견고한 철강 수요와 높은 가격, 미래 성장성 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현대제철의 미국 투자는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국내 대비 천연가스·전력 등의 에너지 비용이 낮고 물류비 절감도 가능해 원가경쟁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까지 더해져 수익성 확보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미국 투자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전환이라는 세계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며 “전기로 제철소는 고로 대비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설비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화 과정 장기화··· 낮은 가동률 리스크도 문제
현대제철이 직면할 가장 큰 문제는 현지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 소요와 그에 따른 고정비용 증가다. 품질 완성도를 맞추기 위한 시스템 정비 등 현지화 단계에서 상당 기간이 소요돼 고정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세아제강의 미국 법인 SSUSA(SeAH Steel USA)의 경우 가동 초기 10%대의 가동률을 기록했고, 생산 2년 차에는 가동률이 30%에 머물렀다. 지난해 기준으로도 가동률은 51%에 그치고 있어 가동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장 가동률은 50%대에 머물고 있다.
현대제철의 미국 진출에서 또 다른 중요한 도전은 전기로만으로 고급 자동차강판을 생산하는 기술적 한계다. 미국 전기로 공장 설립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전기로만으로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고급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고로와 전기로의 쇳물을 섞어서 고급 제품을 만드는 혼합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비용과 불확실한 수익성도 우려된다. 현대제철의 미국 진출에는 총 58억 달러(약 8조 5200억원)라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예상보다 낮은 가동률이나 시장 상황의 변화로 인해 투자 대비 기대 수익을 달성하지 못하면 회사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제철의 미국 진출은 국내 일자리와 지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탄소중립 추세에 따라 친환경적인 전기로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할 경우, 국내 고로 제철소들이 전기로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신규 국내 투자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뒤에 국내에 새로운 전기로 제철소를 설립할 수 있겠냐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일자리와 관련, 미국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밝힌 미국 공장내 신규 일자리는 1300개다. 반면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 포항2공장 무기한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가 현재는 축소 운영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이로 인한 노사간 마찰도 우려되고 있다.
노조 측은 현대제철의 미국 투자가 국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제조업 생산직 노동조합은 회사의 해외 생산거점 투자에 대해 국내 공장의 일감 축소와 고용불안을 이유로 부정적 인식을 갖는 경향이 있다.
현대제철은 “국내 사업장과 해외 투자는 별개이며, 미국 투자는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의 일환”이라고 일축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의 미국 투자는 필수적인 전략이지만, 국내 근로자들과의 원만한 합의 없이 진행될 경우 내부 반발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제철 전기로, 70년 업력 바탕으로 철강업계 탈탄소화 주도
한편 현대제철은 국내 최대 전기로 제강사로서 연간 1000만t 이상의 전기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11기의 전기로를 운영하는 등 국내 철강사 중 전기로 관련 분야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015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의 탄소 저감을 위한 주요 국가 과제에 주관연구기관으로 참여하며 전기로 부문의 주요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에너지기술연구원과 지질자원연구원과 손잡고 탄소포집·활용 저장(CCUS)과 자원 재활용 기술 개발 등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고로 방식은 철광석, 석탄, 석회석 등을 연료로 사용해 고품질의 철강제품을 생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제품 1t당 약 1.9~2t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일반적인 전기로는 철스크랩을 전기의 힘으로 녹여 철강을 생산하는 고철 재활용 용해로로, 철광석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저감되는 기술이다.
일반 전기로 제품은 원료 및 공정 특성상 고로 대비 탄소 배출량이 25% 수준에 불과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품 품질이 고로 방식보다 낮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현대제철은 이러한 전기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독자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독자적인 전기로 기반 탄소중립 철강 생산체제인 '하이큐브(Hy-Cube, Hyundai Hydrogen Hybrid)'를 구축했다. 이는 현대제철 고유의 수소 기반 공정 융합형 철강 생산체제로, 2030년까지 저탄소 고급 판재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이큐브 기술의 핵심은 ‘신(新)전기로(Hy-Arc)’다. 기존의 전기로와 달리, 철 원료를 녹이는 것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고 성분을 추가하는 기능까지 모두 가능한 새로운 개념의 전기로다.
현대제철은 이르면 올해, 늦어도 2029년까지 신전기로(Hy-Arc)를 도입해 2030년부터 자동차 등에 사용될 저탄소 강판을 생산하고, 2040년까지 탄소중립 강판 생산에 돌입할 방침이다.
현대제철은 미세 성분 조정이 가능한 특수강 전기로 정련 기술과 자동차용 초고장력강 압연 기술을 활용해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을 30% 이상 줄이면서도 고급 판재류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에는 프리멜팅(Pre-melting) 전기로 투자를 진행하며 저탄소 철강제품 생산 설비를 확충하고, ‘신(新) 전기로 생산체계’ 구축을 위한 소재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로를 통해 연 250만t의 쇳물을 생산하면 기존 고로 방식 대비 연간 최대 약 350만t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제철이 추구하는 전기로-고로 복합 프로세스를 통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이 약 40% 저감된 강재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제철은 “2030년까지 연간 500만t의 저탄소 철강제품 공급체계를 구축해 신규 수요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며 “또한 자동차, 조선 등 전방 수요시장의 저탄소제품 수요확대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전기로 11기를 보유한 만큼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10% 이상)이 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다음으로 전력 소비가 많은 기업이다. 지난 2023년 기준 1조84억원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냈다. 고로 중심인 포스코(5028억원)보다 두 배 많았다.
이러한 전기요금 부담은 현대제철이 미국에 전기로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내 대비 천연가스·전력 등의 에너지 비용이 낮고 물류비 절감도 가능해 원가경쟁력 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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