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돌발 변수’ 없었지만 공동성명 부재로 불확실성 여전
韓 1500억달러 대미 투자··· 금융패키지 vs 직접투자 시각차
정상회담, 최악 면했지만 국내 산업 운명은 협상에 달려

지난달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이 한 달여 시간이 지난 지금, 한국 산업계에는 뚜렷한 명암이 갈리고 있다. 회담 전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과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며 긴장감을 조성했으나, 실제 회담은 예상했던 돌발 요구나 추가 압박 없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문 발표 없이 끝난 이례적인 정상회담으로 인해 구속력 있는 합의가 부재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진짜 협상은 이제 시작"이라며 향후 실무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업계, ‘마스가 프로젝트’로 최대 수혜··· 원자력도 ‘제2 마스가’로 부상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승자는 조선업계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첫 발언부터 “한국은 배를 아주 잘 만든다”며 조선업 협력을 강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업계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 기회를 확보했다.
총 11건의 양해각서(MOU)와 계약 중 조선 분야가 핵심을 차지했다. HD현대는 서버러스 캐피털, 한국산업은행과 함께 대규모 조선업 공동 투자 펀드 조성 MOU를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은 비거 마린 그룹과 미 해군 지원함 유지·보수·운영(MRO) 사업 협력 MOU를 맺었고, 한화오션은 필리핀 조선소에 7000만 달러를 추가 투자해 2035년까지 연간 건조능력을 현재 1-1.5척에서 10척으로 확대할 계획을 발표했다.
원자력 산업도 조선업에 이어 주요 협력 분야로 떠올랐다. 11건의 MOU 중 최다인 4건이 원전 사업으로 나타나며, 원전이 한미 제조업 협력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줬다.
두산에너빌리티는 AWS, 엑스-에너지, 한국수력원자력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 협력 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SMR 설계부터 건설, 운영, 공급망 구축까지 전방위 협력이 이뤄질 예정이다. 업계는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와 맞물려 중장기적으로 큰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철강업계, 50% 관세 ‘뉴노멀’ 확정으로 구조조정 불가피
반면 철강업계는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실망 업종으로 꼽힌다. 업계가 기대했던 50% 관세 인하나 예외 품목 지정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무역 합의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 입장을 고수했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한다고 밝힌 것이 결정타였다.
그 결과 대미 철강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올해 5월 3억3000만달러(전년 동기 대비 -15.7%)에서 8월 1~25일 1억5000만 달러(-32.1%)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제 ‘50% 관세가 뉴노멀’이라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포스코는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제철소 지분 투자를 검토하고 있으며, 인도 JSW 그룹과의 일관제철소 건립을 추진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립과 함께 그룹 외 완성차 고객사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자동차, 불확실성·경쟁력 악화 우려
반도체 업계는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관세 우대 조치가 명문화되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최근 “반도체 관세는 자동차(25%)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관세 리스크가 재점화됐다. 업계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가 지연되면서 자동차 업계처럼 높은 관세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관세율이 25%에서 15%로 낮아졌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누렸던 무관세 혜택이 완전히 사라졌다. 특히 일본·유럽과 동일한 15% 관세 적용으로 기존 경쟁 우위가 소멸됐다.
1500억달러 투자 계획··· ‘사인 안한 게 득’ 분석도
한국 경제계가 발표한 1500억달러(약 20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두고도 양국 간 이견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대출·보증 중심의 ‘금융패키지’ 구성을 원하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구속력 있는 투자 약정에 사인하지 않은 것이 한국에 득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스러운 정책 변화를 고려하면, 법적 구속력 없는 선언적 의미의 투자 계획으로 남겨둔 것이 오히려 전략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1차 트럼프 행정부 때 한국 기업들이 약속했던 투자 계획 중 상당 부분이 정치적 상황 변화나 경제 여건 악화로 이행되지 못한 경험이 있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공식 약정 없이 유연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미국 측 정책 방향을 지켜본 후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유연성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측이 투자 이행 의지를 의심하며 무역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1500억달러 투자 실행 과정에 대한 후속 모니터링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 발굴이 필요하다”며 “추가 관세 인하가 명확히 이뤄지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협력 강화를 통해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구체적인 ‘디테일’을 채워넣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공동성명 부재로 인해 트럼프의 예측불허 행보에 따라 언제든 불확실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한국 경제·산업계에 미칠 중장기적 영향은 앞으로의 후속 협상 결과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조선·원자력 등 일부 업종의 수혜와 철강·반도체 등의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정부와 기업의 치밀한 대응 전략 수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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