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정유업계 손해 감수 두고 미묘한 신경전 이어져
정부, 연내 구조조정 방안 제출 요구…업계는 유인책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석유화학·정유 간 수직통합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검토하면서 업계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석유화학·정유 간 수직통합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검토하면서 업계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정부가 석유화학 업계에 연 270만~37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안 발표 이후 구조조정 방안 제출을 요구한 가운데 업계 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수직통합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검토하는 가운데,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 구조조정 속도를 늦출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구조조정 두고 업계 간 동상이몽

구조조정안의 핵심은 정유-석화 기업 간 통합이지만, 실제 협상 테이블에선 설비 가치 평가, 지분 정산 방식, 향후 경영권 분배 등에서 이견이 크다.

석유화학 업계는 비용절감과 효율화를 위한 정유사와의 수직계열화를 생존 전략으로 보고 있으나, 정유사 입장에서는 NCC 감축 동참이 수익 악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입장에선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화 측면에서 원유 등을 수입해 정제하는 정유사와 수직통합이 유력한 방안으로 꼽힌다. 정부도 지난달 20일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수직통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구조적 위기에 몰린 석유화학 특성상 통합은 산업 생존의 해법일 수 있다. 구조조정이나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효율성을 높이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정유사는 구조조정 시 수용해야 할 생산설비의 가치평가 불확실성, 감축에 따른 실질적 비용, 인수 후 효율화 부담 등이 크기 때문에 구조조정 참여에 조심스러운 태도다. 우선 정유사도 올해 상반기 부진한 실적으로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만큼 NCC 설비 감축 동참을 꺼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유업계가 지배구조 상 외국계 대주주 및 계열사 구조 등으로 신중함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한다. 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가, GS칼텍스는 미국 쉐브론이 대주주로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해외 지분 구조 때문에 경영 전략, 구조조정 결정, 투자와 통합 등 의사결정 과정이 비교적 더 복잡하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최대 25% 수준의 NCC 설비 감축을 요구하면서 일자리 축소 우려도 커지고 있는 점도 정유사 입장에선 불안요소다. 여수·울산·대산 등 3대 석유화학단지 근로자 수는 약 5만3400명으로, 정부가 권한 25% 감축으로는 산술적으로 1만명 이상의 고용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통폐합시 노사 갈등과 지역 경제 위축이라는 사회적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어, 망설이는 분위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울산 석유화학단지 현장을 방문해 구조개편의 속도전 필요성을 강조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울산 석유화학단지 현장을 방문해 구조개편의 속도전 필요성을 강조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 정부, 속전속결보다 유연한 접근 필요

정부는 지난달 구조조정안 발표 후 최근 복수의 석유화학 기업에 구체적 이행 방안 제출을 공식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년 내 구조조정 마무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정부와 석유화학협회 의뢰로 컨설팅을 진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현재 불황이 이어질 경우 3년 내 국내 석유화학 기업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울산 석유화학단지 현장을 방문해 구조개편의 속도전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오는 10월 중 경쟁력 강화 및 구조개편 관련 세부 이행 방안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에는 김 장관이 기업들의 협조를 촉구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것이란 반응이 나온다.

정부는 '선 자구 노력, 후 지원' 방침을 고수 중이지만 업계에선 정유·석화 간 온도 차가 큰 상황에서 유인책 없이 수직통합을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 통합 시 세제 완화,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 심사 한시적 유예 등 인센티브가 있어야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정유·석화업계는 구조조정에 따른 진통은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자발적 참여 유도와 제도적 보장을 선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말까지로 정한 데드라인 역시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무리하고 서두르는 구조조정은 산업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며 "무리한 속도전보다는 업계 입장차를 고려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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