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 분쟁이 드러낸 한국 석유화학업계 민낯
50대50 합작의 한계··· 구조조정 시급성만 커져
전문가 ”정부 주도 구조조정 없인 韓 석유화학 생존 불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 여천NCC 원료공급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 여천NCC 원료공급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 간 여천NCC 원료공급계약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9년 설립된 여천NCC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대표적인 50대50 합작사례였지만 26년이 지난 현재 이 구조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사업 의존도의 격차에서 비롯됐다. 한화솔루션은 매출의 3분의 2 이상을 에틸렌 기반 범용소재에 의존하며 여천NCC에서 연간 100만톤의 에틸렌을 공급받는다. 반면 DL케미칼은 범용소재 비중이 40%에 불과하고 에틸렌 구매량도 40만t 수준이다. 여천NCC 생산 에틸렌의 70%를 한화가 가져가는 구조에서 원료공급 조건 변화에 따른 영향도 한화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13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국세청이 여천NCC에 부과한 1006억원 법인세 추징을 둘러싼 양사의 입장도 극명하게 갈린다. 한화 측은 추징액의 96%인 962억원이 DL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며 시가계약 체결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반면 DL 측은 한화가 임의로 톤당 46달러 할인을 적용받고 있다며 재협상 거부가 손실을 부추겼다고 맞섰다.

출범 당시부터 대림산업의 에틸렌 생산규모(82만t)가 한화석유화학(48만t)의 2배에 달했음에도 동등한 지분을 나눈 구조적 모순이 존재했다. 대규모 자금 집행과 핵심 거래조건 개정에서 상호 거부권 행사가 가능해 의사결정이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고, 두 주주사가 동시에 주요 고객이어서 이해충돌이 상시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 공세에 무너진 ‘석화 왕국’··· 4대 기업 모두 적자

여천NCC 사태는 개별 기업 갈등을 넘어 국내 석유화학업계 전반의 구조적 위기를 상징한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량이 2016년 2219만t에서 2027년 7225만t으로 225% 증가할 전망이며 이미 자급률 100%를 넘어선 상태다. 중국과 중동의 저원가 공세는 한국 석유화학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4대 기업 모두 2024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 LG화학 1360억원, 롯데케미칼 8948억원, 한화솔루션 300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여수, 울산, 대산 등 주요 단지의 나프타 크래커(NCC) 가동률 저하와 중국·중동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익 악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2025년 국회 미래산업포럼 보고서는 “3년 내 한국 석유화학기업 절반이 사라질 위험”을 경고했다. 한국 석유화학업계의 몰락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효성 등 대형 기업들이 일부 소규모 생산시설을 철거하는 등 자율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으나 근본적 체질 개선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여천NCC 제 1사업장./사진=여천NCC
여천NCC 제 1사업장./사진=여천NCC

“일본식 ‘정부 주도 구조조정’ 벤치마킹해야”

일본 석유화학업계의 대응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90년대 이후 정체된 내수와 중국·중동의 증설 경쟁에 직면한 일본은 정부 주도의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미쓰비시화학, 스미토모화학 등 주요 기업이 비핵심 자산 매각과 손실 사업 정리를 통해 석유화학 설비 통폐합을 추진했다.

특히 에네오스는 2027년까지 가와사키 NCC 2곳을 폐쇄·통합하기로 결정해 선제적 설비 축소로 손실 최소화에 나섰다. 2014년 도입된 산업경쟁력강화법에 힘입어 정부가 생산시설 재편을 지원하고 기업 간 합병과 설비 축소를 유도해 NCC 설비 20% 감축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자율 구조조정을 주문했으나 기업 간 이해관계 충돌과 공정거래 규제, 인수합병(M&A) 제한 등으로 실질적 통합이 지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체계적인 구조조정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공정거래법상 유한책임조합(LLP) 제도 도입을 검토해 기업 간 생산량 조절 협의를 허용하고, 세제 및 금융 인센티브 확대를 통해 설비투자 융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정유사와 석유화학사의 통합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연내 NCC 설비 10~15% 폐쇄 목표를 설정해 이행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등 정부 주도의 강력한 재편 전략이 필요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대규모 설비 통합과 체질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연쇄 부실은 피하기 어렵다”며 “일본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전문화와 효율화 기반을 다졌듯, 한국도 정부 주도의 강력한 재편 전략을 통해 석유화학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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