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DL, 자금 지원 결정에도 양사 갈등 여전
도미노 구조조정 현실화 우려…정부 지원 시급

여천NCC의 위기가 연이어 나오면서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여천NCC 제 1사업장./여천NCC 제공
여천NCC의 위기가 연이어 나오면서 석유화학 산업 전반의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여천NCC 제 1사업장./여천NCC 제공

국내 석유화학 기초원료 생산업체 여천NCC가 부도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러나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부진이 겹친 업황 악화가 장기화되면서, 이번 사태가 산업 전반의 위기에 대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는 운영자금 부족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렸으나, 공동 대주주인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잇따라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지분을 50%씩 보유한 합작사다.

여천NCC는 2017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기세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8년만에 부도설이 나오면서 위기에 놓였다.

여천NCC는 올해 3월에도 유상증자를 통해 2000억원을 수혈받았지만, 최근 또다시 30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한화는 공동 대주주로서 책임 경영 차원이라며 1500억원 대여를 신속히 승인했다.

DL은 워크아웃(구조개선작업) 가능성을 거론하며 초기에는 자금 지원에 부정적이었지만, 부도 위기 수습을 위해 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양사 모두 자금 투입을 결정하면서 여천NCC의 부도는 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화와 DL이 입장문을 내는 등 공방을 이어가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DL케미칼은 "원인 분석 없이 증자만 반복하는 것은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화는 자사 이익 극대화만 주장하고 있다"며 경영 투명성과 장기 대책을 강조했다.

반면 한화 측은 "DL이 원료를 싸게 공급받으려는 의도로 국세청 조사 결과를 외면하고 있다. 신속하게 한화와 협의해 공동으로 여천NCC에 자금을 지원해 조속한 정상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반박했다.

□ 대기업도 설비 매각·통폐합… 정부, 구조조정 특례 서둘러야

석유화학 업계는 2022년 이후 중국발 공급과잉에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3년간 국내 전체 생산능력의 200% 설비가 증설됐고, 국내 범용 제품 위주의 산업 구조와 맞물리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시장 과잉 공급, 국내 제조사의 지속되는 실적 악화 및 적자 등을 근거로 들며 "과감한 구조조정 없이는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며 대규모 구조개편 필요성을 경고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4대 석유화학사(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의 합산 영업손실은 476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00억원)보다 7배 가까이 늘었다. 여수·대산·울산 등 전국 3대 석유화학단지의 NCC(나프타 분해시설) 설비 10곳 중 상당수가 경영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불황이 길어지자 대부분 기업들이 구조 조정에 돌입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은 해외 사업 매각, 국내 유휴 라인 청산 등 계열사 정리 등을 통해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며 재무구조 개선에 힘쓰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나프타 분해시설 통폐합을 논의 중이다.

정부는 구조조정 기금 조성과 함께 합병·사업부 매각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계는 정부 주도의 신속한 구조조정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일본처럼 정부 주도의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석유화학 구조 개혁을 추진해 범용 제품 생산 능력 감축, 기업 통합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여천NCC 사태가 여수 산단을 넘어 국내 석유화학 전반에 파급될 수 있다"며 "두 그룹의 갈등 봉합과 함께 정부 차원의 산업 회복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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