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경쟁력강화 장관회의 열고 1차 구조 조정 안 마련
정부 주도 빅딜 전망… 정유·석화 간 수직 통합·日 식 LLP 유력

정부가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적 위기 타개를 위한 '메가톤급' 구조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글로벌 수요 부진과 중국의 공급 과잉 공세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전면적인 업계 재편 카드를 꺼내들며 산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20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를 개최해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의 밑그림을 완성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부처 장관들이 총출동해 업계 재편의 방향을 잡을 전망이다.
이번 산경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회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수요 부진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상당히 큰 위기에 처했다"며 "관계부처는 석유화학 재편 종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라"고 강력히 지시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위기의식을 언급한 만큼, 산업통상자원부도 자율 구조조정이 아닌 산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구상 중인 구조개편안의 핵심은 설비 통폐합 및 감축을 통한 '선택과 집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유사와 석유화학사의 '수직 통합' 모델과 함께 복수 기업이 생산설비를 공동 운영하는 '일본식 유한책임사업조합(LLP)' 도입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일본식 LLP는 여러 기업이 공동 출자해 핵심 설비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으로, 개별 기업의 투자 부담을 덜면서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윈-윈' 모델로 평가받는다. 업계에서는 이번 구조개편이 단순한 '땜질 처방'을 넘어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외과수술'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전통산업도 포기 안 돼"…산업부 이달 중 대책 발표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제7차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석유화학은 우리 핵심 산업이지만 상당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신산업 육성과 동시에 전통산업 경쟁력 회복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수요 부진,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기업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관련 기업들도 책임감을 갖고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이 석유화학 산업의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은 빠른 구조조정 없이는 산업 자체가 장기 불황에 빠져 국가 경제와 수출, 고용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공유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최근 여천 NCC 사태 등으로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힘들다는 의견이 커지자 정부도 정책 발표를 통해 위기를 해결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산업부는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에 대한 방안을 이번 산경장을 계기로 큰 틀의 방향을 잡은 뒤, 연말까지 빠르게 산업 재편을 완성한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업계가 합심해 설비 조정 등 자발적 사업 재편에 참여해야 한다"며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지난달부터 문신학 1차관이 10여개 석화기업 대표를 각각 개별적으로 만나 각사의 사업 재편 계획을 취합해 정부 지원 방안을 구체화해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7일 김정관 산업부 장관,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과 관계장관 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구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석유화학 사업 재편 관련 진행 상황을 보고받고 향후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 자율 대신 정부 직접 참여… 규제 완화 및 지원책 예상
산업부는 지난해 12월 석화기업의 '자율 구조조정'을 강조하는 지원 방안을 내놨지만 업계에선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부가 석유화학 부문의 '사업재편 필요성'은 언급했지만 고용 및 지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후 업계 자구책 논의도 공정거래 규제와 기업 간 이해관계 충돌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번 석유화학 후속 지원대책에는 구조조정을 촉진할 세제·금융 지원책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대책 발표에서는 개별 기업의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수치도 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정유사와 석유화학사의 '수직 통합'과 함께 복수의 기업이 생산설비를 공동 운영하는 '일본식 유한책임사업조합(LLP)' 도입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이는 모두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과잉설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구조조정 모델이다. 충남 대산석유단지에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인 수직 통합 방식이다. 이를 통해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면서 과잉 생산 문제도 완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또 다른 방안인 일본식 유한책임사업조합(LLP)은 복수의 기업이 공동 출자해 핵심 설비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별 기업의 중복 투자를 방지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과잉 설비를 줄여 산업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공정거래법 규제 완화 역시 석화업계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요구되는 대책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인수·합병(M&A) 시 기업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해당 분야 1위가 되면 결합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를 대형 M&A와 설비 통합의 걸림돌로 지적해왔다. 업계 간 소통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는 협의도 담합 우려가 있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석화 기업들의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재 국내 석화 업체들은 범용 제품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업체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은 어려운 상태에서 정부가 빅딜을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체의 자구안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수익성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대규모 자본이 수반되는 원가 절감 투자 계획을 정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 재편이 원활히 추진되려면 기업 간 협의가 필요한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이런 협의를 금지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석유화학 산업의 근원 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부가가치·친환경 화학소재 품목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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