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감산 압박에 주요 석화 기업 간 구조개편 속도
정유사와 수직 결합 또는 기업 간 설비 통합 등 논의

정부가 연말까지 ‘석유화학 재편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가운데 석유화학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 물밑 작업에 들어가며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정부가 연말까지 ‘석유화학 재편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가운데 석유화학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 물밑 작업에 들어가며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대규모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정부가 연말까지 ‘석유화학 재편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설비 통폐합과 사업 재편, 인력 감축 등 고강도 조치를 속속 검토하면서 시장 판도 변화가 주목된다.

◇ 수직 계열화·설비 통합 등 다양한 방안 거론

5일 석화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화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한 물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 LG화학은 GS칼텍스와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폐합을 검토 중이다. LG화학이 운영하는 여수 NCC 공장을 GS칼텍스에 매각해 양사가 세운 합작사(JV)가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LG화학과 GS칼텍스의 수직 계열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 여수 NCC는 1공장(연 120만t)과 2공장(연 80만t)으로 총 200만t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갖췄다. GS칼텍스는 정유가 주력사업이지만 2022년 준공한 여수 NCC에서 에틸렌을 연 90만t 생산한다.

정유사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재료인 나프타를 부산물로 생산한다. NCC를 가진 석유화학사가 정유사와 합쳐지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생산한 납사를 석유화학 설비에 투입해 원가를 낮추고 공급망을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거래 성사를 위해서는 GS칼텍스 지분 절반을 보유한 미국 셰브론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GS칼텍스는 GS에너지와 셰브론이 각각 지분 50%를 보유한 합작사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와 감산에 따른 공동행위 인가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 역시 "정부 및 타사와 협력을 통해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며 "다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방향이 없어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도 여천NCC와 통합 시나리오를 놓고 신중히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여수에서 연간 123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여천NCC는 229만t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양사가 통합한다면 단일 기준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법인이 된다. 그러나 여천NCC는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절반씩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이해관계 조정이 쉽지 않다. 여기에 최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여천NCC 회생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통합 작업도 난관에 부딪힐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앞서 HD현대오일뱅크와 대산 NCC 설비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두 회사의 합작사인 HD현대케미칼과의 통합 운영 방안도 거론된다.

울산 산업단지에서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NCC 설비 통합 및 공동 감산을 논의 중이다. SK지오센트릭은 SK에너지에서, 대한유화는 에쓰오일에서 나프타를 공급받는 구조다. 동일 산업단지 내에 있는 만큼 협업 시 원가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 정부 감산 압박, 업계 전반 재편 불가피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에서 핵심으로 꼽은 것이 바로 최대 25% 수준의 설비 감축과 수직 계열화 모델이다. 나프타를 공급하는 정유사와 이를 분해하는 석유화학사, 그리고 다운스트림 업체까지 한 축으로 묶는 것이 이상적인 그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서 석유화학 기업 10개사와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 재편 자율 협약식’을 개최하고 연간 270만~370만t 규모의 NCC를 감축하기로 했다. 협약대로라면 전남 여수, 울산, 충남 대산에 위치한 3대 석유화학 산업단지 입주 기업 간에 통폐합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가 각 기업의 자구 노력 정도에 따라 지원을 차등화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하면서 업계 입장에서도 사업 재편을 서둘러야 정부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기업들이지만 정부의 지원 확보를 위해 구조조정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목표대로라면 업체 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며 "수평적 통합 뿐만 아니라 정유 석화 간 수직 계열화가 성사되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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