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만 달러 투자··· 中 고안 '군민융합' 美에 적용
한 시설에서 상업용·군용 동시 생산 "효율 극대화"
“친환경·무인 기술 접목해 미국 시장 10배 성장 노린다”

한화오션이 7000만달러(975억원)를 투입키로 한 미국 필리조선소가 상업용 선박과 해군 함정을 모두 만드는 '민군(民軍)융합' 거점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조선소에서 민간 기업이 발주한 상업용 선박과 군함을 동시에 제조하는 조선소는 중국을 제외한 서방 세계에선 전무하다.
'민군융합'은 중국이 고안한 개념으로 민간 기업과 국영 방산 기업들이 협력해 민간과 군사 분야에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는 전략이다. 한화오션은 이를 차용해, 중국 조선업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미국 시장 등 동맹국 시장에서 '민군융합' 기술로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조선업 위기가 곧 만든 한국의 기회
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몰락한 미국 조선업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때 세계 조선업을 주도했던 미국은 현재 연간 1~1.5척 수준의 건조능력으로 추락한 상태다. 중국이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선박 총량을 넘어서는 상선을 제작하면서 미국의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29억달러(약 4조원) 규모의 조선업 투자 계획과 마스가(MASGA) 프로젝트는 이러한 절박함의 산물이다. 250척 규모의 전략상선단 구축 계획 역시 중국 견제와 자국 조선업 재건이라는 이중 목표를 담고 있다.
이에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를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7000만달러의 추가 투자로 생산능력을 연간 10척으로 확대하고, 연매출을 현재 4억달러에서 40억달러로 10배 증대시킨다는 계획은 투자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는 자본 효율성을 보여준다.
4주 만에 민수선→군함 전환, 어떻게 가능한가
한화오션 전략의 핵심은 민수 선박과 방산 선박을 하나의 설비에서 생산하는 ‘원스톱 제작 체계’다. 10만t급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같은 대형 민수선뿐만 아니라 차세대 무인수상정(MUSV)과 대형 상륙함(LST) 등 핵심 군수 물량을 동일한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생산 설비의 모듈화·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설비 전환 시간을 기존 3개월에서 4주 이하로 단축한 것이 가장 큰 혁신이다. 이를 통해 주문량 변동에 따른 생산 유연성을 확보함은 물론 군수 발주가 급증할 때도 민수 라인 가동에 지장 없이 즉각 전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핵심 기자재는 한국 본사에서 직접 조달하고, 현지 부품은 한화테크윈·한화시스템 등 계열사와 협업한 ‘품질 인증 패스포트’ 발급 체계로 통합 관리한다. 긴급 수리·업그레이드 부품은 LA·마닐라 물류 허브에서 48시간 이내 배송을 보장해 미국 해군·해경 물량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친환경·무인 기술 융합으로 미래 선점
한화오션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는 민수·군수 기술의 교차 적용을 통한 부가가치 극대화다. LNG 연료 추진 시스템과 배터리 혼합 운항 솔루션을 무인수상정 개발에 이식하고, 디지털 트윈 기반 선박 운항 시뮬레이션 기술을 실시간 전투 작전 시나리오 분석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특히 한화오션이 보유한 쇄빙 LNG 운반선 분야 세계 최다 건조 실적(21척)과 암모니아선 개발 기술력은 미국의 알래스카 LNG 사업과 친환경 연료 전환 수요에 직접 연결된다.
한화그룹의 방산 계열사 재편 과정을 통해서도 이런 전략이 명확해진다. 지난 2022년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화디펜스·한화방산을 차례로 흡수합병하며 ‘육상 방산’ 역량을 통합하고, 한화오션 인수로 ‘해양 방산’ 영역까지 확보했다. 여기에 한화시스템의 전자전·지휘통제 기술력까지 더해지면서 국내 유일한 육·해·공 종합방산 그룹으로 완성됐다.
한화오션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필리조선소의 생산성 향상을 넘어 한국 조선업 전체의 미래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앞으로 한화오션이 구축할 ‘한국형 군민융합 조선소’ 모델은 미국과 유럽, 동남아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글로벌 방위산업 지형을 한국 주도로 재편하려는 야심찬 전략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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