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 vs 조선 기술동맹, 각자 절박함
한화 11조, ‘작은 투자’ 아닌 ‘정밀한 전략’

올해 재계 총수들의 투자 선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삼성 450조원, SK 600조원, 현대차 125조원, LG 100조원. 천문학적 숫자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재계 순위 7위 한화그룹의 11조원 투자 발표는 유독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시다. 한화의 투자가 적은 것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설비 전쟁’·조선은 ‘기술 게임’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과 SK의 수백조원 투자를 이해하려면 반도체 산업의 속성부터 알아야 한다.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1124조원, 이 중 메모리 반도체만 303조원 규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자리를 지키려면 쉬지 않고 달리는 수밖에 없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600조원을 쏟아붓겠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현재 인공지능(AI)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62%를 유지하려면 매년 새 공장을 지어야 한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장비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다. 한마디로 반도체는 끝없는 설비 투자를 요구하는 산업이다.
반면 조선·방산은 다르다. 한화그룹이 자회사 한화오션을 통해 진행하는 조선 사업은 기술과 인력이 핵심이지, 반도체처럼 매년 수백조원씩 설비를 증설할 필요가 없다. 한화의 11조원은 거제조선소 확장과 미국 필리조선소 지원에 집중된다. 이미 확보된 조선소 역량을 활용해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대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시장 지배자 vs 전략적 참여자
한화와 삼성·SK의 산업 내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삼성과 SK는 각자의 시장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지배자다. 삼성전자의 450조원 투자는 평택 5공장 건설을 포함해 향후 5년간 반도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투자다. 인텔 등 경쟁사들이 첨단 공정에서 따라잡으려 하는 상황에서 한 발짝이라도 늦으면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
한화는 다르다. 조선·방산 산업에서 한화는 세 번째 플레이어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이미 마스가 프로젝트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고, 한화는 의미 있는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1위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더 근본적으로는 시장 규모 자체가 비교 불가능하다. 2025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1124조원에 비해 전 세계 조선 시장은 수십조원 규모에 불과하다. 한국 조선 3사의 연간 매출을 모두 합쳐도 반도체 시장의 극히 일부다. 조선업에서의 11조원과 반도체업에서의 450조원은 애초에 비중의 차원이 다르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담은 11조원··· 포지션 확보 차원
한화의 11조원이 '너무 적어' 보인다면, 그것은 오히려 한화 경영진의 정확한 판단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조선업은 반도체처럼 매년 수백조원의 설비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 아니다. 마스가 프로젝트에서 최적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 11조원이라는 뜻이다.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마스가는 단순한 조선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술과 인재 교류를 통한 한·미 전략산업 동맹”이라며 “한화의 투자는 '규모 경쟁'이 아닌 '전략적 참여'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SK가 반도체 지배력 유지를 위해 수백조원을 투자한다면, 한화는 조선 시장에서 의미 있는 포지션 확보를 위해 11조원을 투자하는 셈”이라며 “숫자는 다르지만, 각 기업의 전략적 필요성 측면에서 보면 동등한 절박함과 합리성을 담고 있으며, 투자의 '격(格)'이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 450조·현대차 125조··· 재계, 통 큰 투자 "국내 공동화 없다"
- 美 해군총장, K조선소 방문··· 마스가 프로젝트 본격화 신호탄
- 트럼프, 韓 핵잠 승인··· ‘한국형 SSN’ 시대 열린다
- 정부 ‘밀고’, 조선 ‘끈다’··· ‘AI 자율운항선’ 신시장 주도권 공략
- 한화에어로·시스템, 글로벌 확장 대비 신임 임원 10명 선임
- 공정위, 한화에어로·KAI 현장조사··· 방산업계 ‘갑질’ 수사 착수
- ‘스마트 조선소’ 시대 개막··· 조선 3사, 친환경 선박 양산 체제 본격화
- 한화오션, 미중 무역합의로 ‘제재 해제’··· 美 조선시장 공략 청신호
- 韓, 핵추진 잠수함 보유국 진입··· 군사전략 전환 분수령
- 한화오션 “노조 지원 의혹 사실무근··· 건전한 노사 상생 지속”
- 롯데건설, 샤워의자 '엔젤시트'로 2025 굿디자인 어워드 동상 수상
- 한화오션, 겹악재 딛고 ‘트리플 프로젝트’ 결실 초읽기
- 캐나다 산업부 장관 방문··· 한화오션, 60조 ‘잠수함 수주’ 눈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