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목표 현실화··· 한국 조선업 생존 조건 된 기술 혁신
AI·로봇·디지털트윈 결합한 스마트 조선소··· “효율·친환경 경쟁력 강화”
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 주도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 해운업 탄소 순배출 제로를 선언하면서 조선업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친환경 선박 개발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으로 부상했고, 이를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로 스마트 조선소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 조선 ‘빅3’가 3조 원 이상을 투입해 인공지능(AI), 디지털 트윈, 로봇 기술을 결합한 차세대 스마트 조선소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생산 전 과정을 디지털로 통합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친환경 선박의 대량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2030년 선박 시장 75% 재편··· 암모니아 추진선 대세
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IMO는 지난해 7월 기존 감축 목표를 대폭 강화했다. 2050년 50% 감축에서 100% 탄소중립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2030년까지 최소 20%, 2040년까지 최소 70% 감축이라는 중간 목표도 설정했다. 유럽연합(EU)의 규제는 더욱 시급하다. 탄소배출권 거래 프로그램을 해운업에 적용했고, 'FuelEU Maritime' 규제도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다. IMO의 탄소집약도지수(CII) 규제에서 E등급을 받거나 3년 연속 D등급을 받으면 운항 자체가 제한된다.
시장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클락슨 리서치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약 75%가 대체 연료 선박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글로벌 친환경 선박 발주량은 1377척에 달한다.
당장은 액화천연가스(LNG) 추진선이 주류다. 황산화물 배출이 거의 없고 이산화탄소와 질소산화물을 기존 선박보다 20% 덜 배출한다. 하지만 LNG도 탄소 배출이 불가피해 진정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차세대 연료가 필요하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암모니아다. 질소와 수소로 이뤄진 암모니아는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무탄소 연료다. 극저온 시스템이 필요한 LNG나 수소와 달리 상온에서 저장·운송이 가능해 인프라 구축도 용이하다.
한국 조선 3사는 암모니아 추진선 개발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6년까지 암모니아 추진선 인도를 예정하고 있으며, 암모니아 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일체형 스크러버 기술을 공개했다. 삼성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전지 추진 암모니아운반선 기본인증을 획득했고, 거제조선소에 실증 설비를 구축했다. 한화오션은 100% 암모니아 연료 가스터빈 발전기 기반 선박 모델을 개발했다.
디지털 트윈·AI·로봇이 만드는 무결점 생산 체계
문제는 친환경 선박, 특히 암모니아나 수소 추진선이 기존 선박과 차원이 다른 기술 복잡도를 갖는다는 점이다. 암모니아의 독성 제어, 새로운 연료 시스템의 안전성 보장, 극저온·극고압 상황에서의 시스템 안정성 확보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는 핵심이 스마트 조선소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 조선소에서 생산 공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설계 단계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오류를 사전에 방지한다. HD현대의 ‘Twin FOS’ 시스템은 이를 통해 생산 효율을 25% 이상 개선하는 성과를 냈다.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 센서는 공정의 모든 데이터를 1분 단위로 수집하고, 인공지능(AI)이 이를 분석해 최적의 작업 조건을 실시간으로 도출한다. 친환경 선박의 복잡한 부품 조립, 극저온·극고압 용접, 안전 테스트 등 고난도 공정에서 품질 편차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로봇 자동화도 핵심이다. 암모니아나 수소를 저장하는 탱크는 극도의 정밀도를 요구한다. 한화오션은 공정별로 최대 70%까지 로봇 자동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초고출력 레이저 로봇을 도입하면 여러 번 필요하던 용접 작업을 한 번에 처리해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품질은 향상시킬 수 있다.

설계부터 운영까지··· 생애주기 탄소 감축
스마트 조선소의 기여는 생산 단계에 그치지 않는다. 고도화된 설계 최적화 기술로 선박의 저항 특성, 추진 효율, 부하 분배를 설계 단계부터 정밀하게 계산해 운영 단계에서의 연료 소비량을 줄인다.
HD현대의 'SVESSEL'은 실시간 모니터링과 함께 항로 최적화, 연료 소모량 분석 등을 제공한다. 현재 200척 이상의 선박에 설치됐다. 삼성중공업의 'S-Engine'은 AI와 빅데이터를 접목해 기존보다 10% 이상 연료비를 절감한다.
실제 삼성중공업은 올해 1~8월 인도한 선박 22척의 생애주기(평균 24년) 동안 총 1,058만톤의 탄소 감축 기여량을 달성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승용차 약 595만대가 1년간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축발전기모터시스템, 공기 윤활 시스템, 로터 세일 같은 탄소 저감 부품의 정밀한 통합과 검증도 스마트 조선소의 데이터 기반 품질 관리를 통해 이뤄진다. 이들 기술을 결합하면 연간 5~7%의 연료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조선 3사 3조 원 투자··· “중국과 기술 격차 10년 유지가 관건”
삼성중공업은 웹 기반 통합 플랫폼 ‘S-EDP’를 통해 디지털 정보를 자동 저장·공유하고 실시간 협업 환경을 구축했다. 회사는 2030년까지 설계 자동화율을 두 배로 높여 친환경 선박 설계의 대량 생산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HD현대는 지난해 설계·생산 일관화 통합 플랫폼 구축 계획을 발표했으며, 지멘스와 다쏘시스템 등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2028년 완성을 목표로 한다. 총 투자 규모는 2030년까지 3200억원을 넘는다. 한화오션은 드론과 IoT 센서를 활용한 디지털 생산센터를 운영하며, 화재·가스·공기질 센서를 연계한 지능형 모니터링 체계를 통해 암모니아·수소 선박 건조 안전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선박용 액체수소 저장탱크, 암모니아 연료 시스템 등 10종의 친환경 선박 관련 국제표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최근 부산에서 열린 국제표준화 총회에서 암모니아 연료 선박용 밸브와 열교환기 시험절차를 신규 국제표준안으로 제안했다.
정부도 관련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2023년 친환경 선박 예산은 전년 956억 원에서 1454억 원으로 52% 늘었고, 이 중 722억 원이 친환경 선박 기술개발에 배정됐다. 수소·암모니아 추진 엔진, 전기 추진기 등 무탄소 선박 핵심 기술의 국산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2,400억 원 규모의 조선업 지원 예산을 편성하고, 연말까지 ‘AI 첨단 조선소’ 추진 전략을 내놓을 계획이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수소·암모니아 추진선에 대한 국제 안전 기준은 아직 마련 단계이며, 스마트 조선소의 데이터 기반 검증 기술이 새로운 표준 수립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 조선사들이 스마트 조선소 기술에서는 여전히 10년가량 뒤처져 있지만, 정부 지원을 앞세워 빠르게 추격하는 점도 경계 요인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스마트 조선소는 이제 단순한 생산 효율화 기술을 넘어 친환경 선박의 안정적 설계와 대량 생산을 뒷받침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2030년 전후 전 세계 선박 시장의 75% 이상이 친환경 선박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국 조선소의 스마트 기술력이 글로벌 해운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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