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달러 조선펀드가 '게임체인저'… 미·중 해군 패권 경쟁 요점 노렸다
자동차 관세, 15% ···'무관세 시대' 종료
반도체 산업, 향후 품목관세에 대한 불확실성 "조금은 줄었다"
큰 틀에서 합의는 도출… 세부적인 협상은 지속, 향후 대응이 더 중요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8월 1일 관세 폭탄을 하루 앞두고, 한국 정부가 전격적으로 내민 승부수가 긴박한 협상 판을 일거에 뒤집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조선업 부활 프로젝트, ‘마스가(MASGA)’와 연계한 대규모 조선업 협력안을 제시했고, 이 전략적 제안이 결국 한미 양국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하지만 GDP 대비 20.4%에 달하는 3500억달러 투자 약속이 과부담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미 FTA 무관세 시대의 종료로 우리 기업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 관세 폭탄 완화에 1등 공신 역할한 K-조선
이번 관세 협상에서 1등 공신 역할을 한 것은 조선업이다. 실제 대통령실과 관세협상단은 이번 협상에서 조선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1일 미국 현지에서 진행된 브리핑에서 "오늘 합의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1500억달러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패키지, 소위 마스가 프로젝트로, 오늘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이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의 조선업 카드가 협상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조선업의 심각한 쇠락이 있다. 세계 조선업 강국이었던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수주 점유율이 0.04%에 불과하며, 연간 7척 수준의 선박만 건조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2위 조선업 강국으로 전 세계 선박 건조의 28%를 차지하며,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절박함은 중국과의 해상 패권 경쟁에서도 드러난다. 중국 해군 전함 보유 척수가 234척으로 미국(219척)을 앞질렀고, 미국은 2054년까지 연평균 300억달러를 투입해 신규 함정을 조달할 계획이지만 자체 건조 역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한국의 조선업은 미·중 해군 대결의 전장 한가운데에서 미국이 기댈 수밖에 없는 ‘최후의 선택지’가 됐다.
◇ 1500억달러 펀드 발판… K조선, 미국 진출 본격화
한국 조선업계가 1500억달러(약 195조원) 규모의 대형 펀드를 토대로 미국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선다. 한·미 상호관세 협상의 핵심 카드로 부상한 이번 펀드는 중국에 밀려 고전하던 한국 조선산업에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며, 글로벌 조선 패권 재편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총 3500억달러에 이르는 대미 투자 패키지 중 1500억달러를 조선 협력 전용으로 배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자금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MASGA)’와 맞닿아 있는 전략적 투자로, 한국수출입은행·한국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금융기관이 대출과 보증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용된다.
정부는 이번 펀드를 통해 한국 조선사들의 미국 현지 투자, 기술 이전, 유지·보수·정비(MRO) 거점 구축까지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조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한국 기술력을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하며, 한·미 산업협력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을 마련랬다.
실제로 한국 조선 3사는 이미 미국 진출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1억달러를 투입해 필리조선소를 선제적으로 인수했고, HD현대중공업은 미 해군성으로부터 MRO 협업 파트너 지위를 확보했다. 세부적으로는 한화오션이 필리조선소를 통한 방산 시너지 확대, HD현대중공업이 군산조선소의 MRO 거점화, 삼성중공업이 LNG선·해양플랜트 기술 수출에 각각 주력할 계획이다.
미국 해군은 오는 2054년까지 364척의 함정 건조를 계획하고 있으며, MRO 시장만 해도 연간 최대 74억달러에 달하는 대형 시장이 형성될 전망이다. 지난해 세계 조선 수주 점유율 17%에 머물렀던 한국 조선업에 대반격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도전과제도 적지 않다. 미국의 존스법 등 보호무역 장벽과 높은 현지 건조비, 그리고 법률 개정의 불확실성이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경쟁 속에서, 초기 펀드 운용의 수익성 확보와 현지화 성공 여부가 한국 조선업의 운명을 가를 전망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1500억달러 펀드는 K조선이 글로벌 조선 가치사슬의 핵심 파트너로 거듭나는 분수령”이라며 “법제도 리스크와 효율적 운영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 한숨 돌린 주요 대미 수출 산업…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편, 이번 대미 관세 협상으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반도체 산업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올해 4월부터 품목관세(25%)를 적용받고 있는 자동차산업은 올해 2분기부터 그 여파가 그대로 드러났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2분기 각각 48조2867억원, 29조349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현대차 7.3%, 기아 6.5% 증가한 수치로, 양사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하락했다. 현대차는 3조6016억원, 기아는 2조76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현대차 15.8%, 기아 24.1% 줄어들었다. 매출이 늘어났음에도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 든 것이다.
이는 관세의 영향이다. 미국은 올해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현대차는 관세로 인해 8282억원, 기아는 7860억원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기조가 이어질 경우 양사는 3분기 관세로 1조원 가량의 영업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대미 관세 협상이 15%로 타결되면서 자동차 관세 역시 15%로 하향된다. 큰 손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다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그동안 국산 자동차의 경우 한미 FTA로 인해 무관세를 적용받아왔고, 일본과 유럽은 2.5%의 관세를 적용받아왔다. 이를 통해 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관세협상으로 인해 국산 자동차는 일본, 유럽과 마찬가지로 15%의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 이를 감안해 정부는 자동차 관세에 12.5% 관세율 적용을 목표로 했으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유리했던 2.5%의 관세 차등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그룹은 “대미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준 정부와 국회의 헌신에 감사한다”며 “현대차‧기아는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관세 완화를 위해 미국 투자 및 생산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미국에 4년간 210억달러(약 31조원) 투자를 밝힌 바 있다. 특히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HMGMA) 등 3개 공장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총 86억달러를 투자해 현재 100만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120만대 규모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자동차 외 철강, 알루미늄에 대한 품목관세 협상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품목관세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후에 반도체나 의약품에 품목관세가 있으면 경쟁국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 최혜국 대우를 적시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합의에 대해 반도체 업계는 안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31일 진행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이번 대미 관세 협상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감소됐다”고 평가하며 “합의된 세부 내용을 예의주시하며 이에 맞춰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 지킬 건 지켰다… 향후 대응이 더 중요

한편, 이날 대통령실은 관세협상 타결에 대한 결과를 발표하며, 협상의 의미와 향후 방안 등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미 관세협상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상호호혜적 결과를 도출한다는 자세로 임했다”고 설명했다.
그 노력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야는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다. 미국 정부는 농축산물 시장의 완전한 개방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정부는 쌀‧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실제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농업 분야는 99.7%가 개방된 상태로 0.3%인 약 10개 품목만 유보된 상태”라며 “쌀, 소고기를 담당하는 미국 USTR이 완전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식량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추가시장 개방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1000억원 상댕의 액화천연가스(LNG)나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한 점에 대해서는 에너지 수입을 다변화한 정도라는 설명이다. 김 실장은 “이는 통상적으로 수입하는 규모로, 약간의 중동산을 미국산으로 바꾸는 구성 변화는 있지만 필요로 하는 에너지 수입액으로 구매에 무리가 없는 액수”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에 투자하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정부는 앞서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5500억달러), EU(6000억달러)에 비교했을 때 불리한 협상은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 실장은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점을 고려했을 때 일본과 한국의 펀드규모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며 “단 한국과 일본의 대미 흑자 규모는 비슷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투자펀드는 조선분야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2000억 달러로 일본 투자펀드의 36%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3500억달러의 투자펀드가 국내 GDP(국내총생산)대비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일본의 경우 GDP 대비 대미 투자액이은 14%, EU는 7%"라며 "이번 대미 투자 규모 발표액 3500억 달러는 우리 GDP 대비 약 20.4%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에서도 향후 조치가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미 FTA로 무관세를 적용받던 우리에게 15% 관세는 도전적일 수 있다”며 “정부와 기업들의 창의성과 경쟁력이 발휘된다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큰틀에서 합의는 마쳤지만 세부적 내용은 추가 협의를 통해 채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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