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예타 면제로 6034억 투입··· “2032년 완전자율운항 목표”
노르웨이·일본·중국 앞선 실증 경쟁··· 265조 시장 주도권 쟁탈전
2연료 15% 절감·탄소중립·사이버보안, 기술 난제도 실증으로 돌파

바다 위를 사람 없이 달리는 배. 오는2032년이면 선장도, 항해사도 없이 인공지능(AI)이 모든 판단을 내리는 ‘레벨4’ 완전자율운항선박이 바다를 누빌 전망이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바다 위를 사람 없이 달리는 배. 오는2032년이면 선장도, 항해사도 없이 인공지능(AI)이 모든 판단을 내리는 ‘레벨4’ 완전자율운항선박이 바다를 누빌 전망이다.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고 7년간 6034억원을 쏟아붓기로 하면서 한국 조선업계의 미래 먹거리 확보 경쟁에 시동이 걸렸다. 2032년 265조원 규모로 폭발할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일 ‘AI 완전자율운항선박 기술개발 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를 최종 확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가 2026년부터 2032년까지 각각 2500억원, 2000억원을 투입하고, 민간이 1500억원을 매칭해 국제해사기구(IMO) 레벨4 수준의 완전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한다는 청사진이다.

K조선, 자율운항 레빌2~3단계 머물러··· 돌파구는 없나

삼성중공업·HD현대·한화오션 등 빅3 조선사가 앞다퉈 AI 자율운항선박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술적 난제와 상용화 시점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자율운항선박은 자율 수준에 따라 4단계로 나뉜다. 레벨1은 자동화 지원, 레벨2는 선원 탑승·원격제어, 레벨3는 무인·원격제어, 레벨4는 선박 스스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완전자율 단계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레벨2~3 수준에 머물러 있다.

HD현대는 2022년 32만5000t급 광석운반선으로 한국-브라질 2만km 항로 중 절반을 자율운항에 성공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회사 아비커스가 개발한 ‘하이나스 2.0’은 2024년 에이치라인해운에 30척 규모로 공급됐고, 현대글로비스 자동차운반선 7척에도 탑재됐다.

삼성중공업은 독자 시스템 ‘SAS’로 올해 9월 태평양 횡단 실증에 성공했고, 10월 일본 선급 기술인증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한화오션은 2022년 레벨3 기술을 확보했으나 애초 목표였던 2024년 레벨4 상용화는 지연되고 있다.

문제는 레벨4로 가는 길이다.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브레이크가 없다. 엔진을 꺼도 관성 때문에 수 킬로미터를 더 나아간다. 바람·파도·조류 같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수시로 개입하고, 연안과 항만으로 갈수록 다른 선박과 장애물이 많아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육상 자율주행보다 훨씬 복잡한 환경인 셈이다.

사이버 보안 문제도 지적된다. 자율운항선박은 위치정보시스템(GPS), 자동식별장치(AIS), 위성통신 등으로 연결돼 있어 해킹에 취약하다. 지난 2017년 독일 컨테이너선이 해적의 해킹으로 10시간 동안 조종 불능 상태에 빠진 사례도 있다. AIS는 암호화조차 되지 않아 공격자가 가짜 선박을 생성하거나 충돌을 유도할 수도 있다. AI 학습용 해상 데이터 부족, 법제도 정비 지연, 선원 일자리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운항 레벨4 상용화에 맞춰 제때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관 주도의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입이 신속하게 집행되고, 실제 업계 수요와 연계된다면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친환경 항해 혁명··· AI 최적항로로 탄소·연료 15% 절감

레벨4 자율운항선박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탄소중립이다. AI가 기상·해류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최적항로를 찾아가면 연료 소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중국의 무인 화물선 ‘근두운0호’는 실증 과정에서 연료비를 15% 이상 절감하는 성과를 냈다. 

IMO는 2050년까지 국제해운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7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 세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약 2.9%를 차지하는 해운업계에 강력한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로 대기오염물질 저감 효과만으로도 연간 3400억원의 환경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율운항 기술은 친환경 연료 전환과도 시너지를 낸다. 수소·암모니아 같은 무탄소 연료나 LNG 같은 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 AI 기반 운항 최적화를 결합하면 탄소 감축 효과가 극대화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운항선박은 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해양안전과 탄소절감에 기여하는 해운물류 산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르웨이 이미 무인선 운항··· 중국은 특허 공세, 한국은?

글로벌 시장은 2024년 102조원에서 2032년 265조원으로 76%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노르웨이는 2021년 세계 최초 무인 화물선 ‘YARA Birkeland’를 띄웠고, 콩스버그는 전기추진 자율운항 예인선을 개발 중이다. 일본은 국토교통성이 NYK, K-LINE 등에 연구비를 지원하며 민관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영국은 ‘10년 내 완전 무인 자율운항’이라는 장기 로드맵을 내놨다.

중국의 추격도 거세다. 광둥성 주하이에 30만㎡ 규모의 실증 인프라를 구축하고, 2019년 무인 화물선 ‘근두운0호’로 건설비 20%, 운영비 20%, 연료비 15% 절감 효과를 입증했다. 막대한 R&D 자금을 바탕으로 차세대 자율운항 특허를 대량 출원하며 기술 추월을 노리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완전자율운항 기술은 선택이 아닌 생존 과제”라며 “핵심은 2032년 IMO 국제표준 제정 시점이며, 그 전에 기술 완성도를 높이고 실증을 마쳐야 신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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