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km 태평양, 선원 개입 없이 완전 무인 항해 성공
265조 시장 향한 빅3 경쟁, 삼성중공업 기술력으로 반전
“상용화 앞세운 현대·한화와 달리 ‘완성도’로 승부수”

삼성중공업이 세계 최초 대형 상용선박 완전 무인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며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자율운항선박 개발에서 명백한 후발주자였던 삼성중공업이 기술적 완성도로 승부수를 던지며 조선업계 빅3의 경쟁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오는 2032년 국제해사기구(IMO) 법규 발효를 앞두고 265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글로벌 자율운항선박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시간 기상 예보 기반 AI··· 속도 제어 크루즈 기능 실증
2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최근 독자 개발한 인공지능(AI) 자율운항시스템(SAS)을 검증하기 위한 태평양 횡단 실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삼성중공업의 SAS 시스템이 지난달 25일부터 9월 6일까지 13일간 대만 에버그린사의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에 탑재돼 미국 오클랜드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약 1만km를 완전 무인으로 항해한 것은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실증 기간 동안 선원의 개입 없이 104회의 최적 가이드와 224회의 선박 자동 제어를 수행하며 연료 절감과 정시 도착을 동시에 달성했다.
이는 HD현대 아비커스가 추진해 온 상용화 전략과는 정반대 접근법이다. 아비커스는 ‘하이너스 컨트롤(HiNAS Control)’ 시스템으로 세계 최초 2단계 자율운항 솔루션 상용화에 성공하며 2024년 말 에이치라인해운과 30척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HiNAS Control은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원격 제어가 가능한 2단계 자율운항에 해당한다. 반면 삼성중공업의 SAS는 AI가 독립적으로 항로 설계부터 기상 대응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완전자율운항 기술을 지향한다.
한화오션은 자율운항시험선 ‘한비(HAN-V)’를 통해 ‘DS4 SafeNavigation’ 시스템을 개발하며 2030년까지 완전자율운항(레벨4)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직 연안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삼성중공업 SAS 시스템의 진정한 경쟁력은 단순한 자율운항 기술을 넘어선 통합 플랫폼으로서의 확장성에 있다. 지난 2019년부터 개발된 SAS는 레이더, GPS, 자동식별장치(AIS), 카메라 영상이 융합된 상황 인지 기술과 충돌 회피를 위한 엔진·방향타 자동제어, 주야간 사각지대 없는 AI 감시 시스템을 통합한 종합 솔루션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시스템 ‘스마트싱스(Smart Things)’와 연계돼 선박 외부의 모든 센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한다는 점은 경쟁사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차별화 요소다.
여기에 블록체인 보안 기술을 접목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SAS와 전자항해일지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비체인 토르(VeChain Thor)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전송함으로써 제3자의 정보 조작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을 검증했다. 향후 사이버 보안이 핵심 이슈가 될 자율운항선박 시장에서 이는 중요한 경쟁 우위가 될 전망이다.
삼성중공업은 2019년 3.3m 무인선 ‘이지고’부터 시작해 2020년 300t급 예인선 ‘SAMSUNG T-8’, 2021년 9200t급 대형선박까지 단계적으로 실증 규모를 확대해온 체계적 접근도 강점이다. 이번 태평양 횡단 실증은 그 집대성으로, 6년간의 기술 축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65조원 시장 패권 경쟁, 중국 변수가 관건
글로벌 자율운항선박 시장은 2024년 85억달러(약 11조9800억원)에서 2032년 최대 1805억달러(약 26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성장률이 6.2~9.2%에 달하며, 한국 시장만으로도 2033년 34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거대한 시장을 둘러싼 국가 간 기술 표준화 경쟁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각국은 2032년 IMO 자율운항 규제 시행을 앞두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기술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이 인증된 센서와 하드웨어 중심의 표준을 앞세우는 데 반해, 한국은 AI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이 완전자율운항 실증에 성공한 것은 한국이 AI 소프트웨어 기반 표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변수가 만만치 않다. 중국은 2008년부터 ‘LOGINK’ 해상물류 데이터플랫폼을 통해 100여 개 해외 항만의 데이터를 축적하며 데이터 우위를 점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자율운항선박 관련 특허의 96%가 중국에 등록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삼성중공업의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특허 분쟁과 시장 진입 장벽이라는 현실적 과제가 남아있다.
업계에서는 연안용 무인선박의 상용화가 2030년, 대양 항해용 선박은 2032년 IMO 규제 시행 이후에나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의 이번 성과는 이 일정을 2~3년 앞당길 수 있는 기술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완전자율운항 기술이 상업화될 경우 선박 운용비가 25% 이상 절감될 수 있어 해운업 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힘을 보탠다. 올해 1월 시행된 ‘자율운항선박법’을 통해 AI 기반 자율운항 기술을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했고, 한미 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 펀드에서도 이를 중점 협력 분야로 채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이번 기술적 성과를 얼마나 신속하고 확실하게 상용화 우위로 연결하느냐가 향후 한국 조선산업의 주도권을 좌우할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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