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IMO 규제 앞두고 기술패권 경쟁 본격화
HD현대 통합 생태계·삼성重 최장거리 실증·한화오션 친환경 규제 대응
기술 격차·사이버 보안 과제 안고도··· 2030년 세계 시장 50% 점유 목표

글로벌 자율운항선박 시장이 오는 2030년 최대 254억달러(약 34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국 조선 ‘빅3’가 차세대 해운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각기 다른 전략에 나섰다. 2032년 국제해사기구(IMO) MASS Code 의무 시행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앞두고, HD현대는 통합 솔루션과 조기 상용화,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장거리 실증, 한화오션은 친환경 플랫폼으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업계는 향후 5년을 글로벌 판도를 결정할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자율운항 기술이 연료 소모를 최대 15% 줄이고 최적 운항 경로 탐색을 통해 운항비를 최대 20%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더해지면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HD현대, 200척 수주로 상용화 선점··· "통합 생태계가 승부수"
HD현대는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 아비커스를 앞세워 가장 빠른 상용화 속도를 자랑한다. 핵심 기술인 '하이나스 컨트롤'은 IMO 자율운항 기준 2단계에 해당하는 시스템으로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선박의 항해장비와 센서 데이터를 AI가 통합 분석해 최적 항로와 속도를 자동으로 결정한다.
이 시스템의 기술적 우위는 실시간 환경 적응형 최적화에 있다. 파도, 해류, 바람은 물론 선박의 도착시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료 소모를 최소화하는 엔진속도를 계산하고 자동 실행한다. 예컨대 날씨가 좋아 프로펠러에 하중이 적을 때는 속도를 높이고, 악천후로 하중이 많을 때는 과속을 피해 정시 도착과 연비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HD현대의 가장 큰 무기는 숫자로 입증된 시장 지배력이다. 현재까지 200척 이상을 수주하고 20척 이상에 실제 적용 중인데 이는 노르웨이 콩스버그나 영국 롤스로이스 같은 글로벌 강자를 뛰어넘는 상업화 성과다. 2024년 말 에이치라인해운과 체결한 30척 규모 계약은 단일 계약으로는 업계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다. 올해 4월에는 싱가포르 이스턴퍼시픽쉬핑과도 추가 계약을 성사시켰다.
기술적으로는 복수 원격운영센터(ROC) 간 제어권 전환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안전성을 한층 강화했다. 한 센터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센터로 즉시 제어권을 이관할 수 있어 24시간 끊김 없는 관제가 가능하다. 계열사 시너지도 두드러진다. HD현대마린솔루션의 항로 최적화 솔루션 '오션와이즈', HD한국조선해양의 AI 화물 운영 시스템 'AI-CHS'를 통합해 선박 설계부터 운항, 유지보수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 AI 생태계를 구축했다. 현재는 선원 탑승 없이 원격 제어가 가능한 자율운항 3단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태평양 1만km 무인 횡단으로 기술력 입증
삼성중공업은 실증 데이터로 기술력을 말한다. 지난 9월 대만 에버그린의 1만5천TEU급 컨테이너선에 자체 개발한 'SAS 시스템'을 적용해 미국 서부 오클랜드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약 1만km를 선원 개입 없이 완주했다. 이는 IBM의 메이플라워호가 2022년 달성한 대서양 횡단(5600km)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 최장거리 무인 항해 기록이다.
이번 실증의 핵심은 경제성과 정시성의 동시 달성이다. SAS는 3시간마다 기상을 분석하며 최적 가이드 104회, 자동 제어 224회를 수행했다. 연료 소모를 줄이면서도 예정된 도착 시간(ETA)에 정확히 입항해 상업적 실용성을 입증했다. 단순히 무인으로 항해하는 것을 넘어 경영 효율까지 고려한 스마트 운항이 가능함을 보여준 셈이다.
SAS의 차별화 무기는 세계 최초로 실선에 적용한 360도 어라운드뷰 시스템이다. LTE/5G 이동통신 기술과 결합해 육상관제센터에서 마치 하늘에서 선박을 내려다보듯 실시간 영상을 보며 원격 제어할 수 있다. 선박의 레이더, GPS, AIS 등 항해통신장비 신호를 실시간 분석해 주변 선박과 장애물을 인지하고, 충돌 위험도를 평가해 최적 회피경로를 자동으로 찾아낸다.
복잡한 연안 환경에서의 검증도 완료됐다. 2022년 목포해양대 실습선 '세계로호'를 통해 진행한 시험에서는 29번의 충돌 위험 상황을 모두 성공적으로 회피했다. 특히 해상 조업이 활발한 이어도 인근에서 선수와 우현으로부터 동시에 여러 어선이 접근하는 복합 상황에서도 SAS가 5초마다 정확한 회피경로를 제시해 성능을 입증했다. 이는 노르웨이 콩스버그나 롤스로이스도 아직 달성하지 못한 복잡 환경 대응 능력이다.
삼성중공업은 AI 기반 챗봇 'SBOT'을 선박 설계에 적용하는 등 AI 기술을 조선업 전 분야로 확산시키고 있다. 이동연 조선해양연구소장은 "SAS는 단순 충돌 회피에서 경제적 속도 유지와 정시 도착까지 지키는 수준으로 진화했다"며 "향후 에버그린과 협력해 속도뿐 아니라 항로 최적화까지 기술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오션, 친환경 규제 대응 플랫폼으로 틈새 공략
한화오션은 환경 규제가 핵심 화두로 떠오른 해운업계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자체 개발한 스마트십 플랫폼 'HS4'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실시간 선박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선박탄소집약도지수(CII)를 자동 계산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속도와 경로를 제시한다.
CII는 IMO가 2022년부터 시행 중인 친환경 규제로, 매년 5000t급 이상 선박에 A부터 E까지 등급을 부여한다. E등급이나 3년 연속 D등급을 받으면 개선계획 수립과 재검증을 받을 때까지 운항이 제한돼 선주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한화오션의 CII 모니터링 기술은 이러한 규제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할 수 있는 실질적 솔루션을 제공한다.
실증 인프라도 체계적이다. 전용 시험선 '한비'는 증강현실 기반 원격관제 시스템과 저용량 데이터로도 작동 가능한 디지털 트윈 시스템을 갖췄다. 2022년 11월 서해 제부도 인근 해역에서 'DS4 Safe Navigation' 시스템 해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는 핀란드 바르실라의 AHTI 플로팅 랩과 유사한 수준의 실험 환경을 제공한다.
생산 혁신도 두드러진다.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구축한 '디지털생산센터'는 공항 관제탑처럼 거대한 생산 현장을 한눈에 파악한다. 드론과 IoT 센서로 건조 중인 블록 위치를 실시간 확인하는 '스마트생산관리센터'와 바다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상태를 육지에서 모니터링하는 '스마트시운전센터'로 구성됐다.
친환경 기술 포트폴리오도 풍부하다. 축발전기모터시스템(SGM)은 엔진 축에 모터를 연결해 회전력으로 전력을 생산해 발전기 의존도를 낮춘다. 공기윤활시스템(ALS)은 선박 바닥에 공기층을 만들어 마찰 저항을 줄인다. 두 기술을 결합하면 연간 5~7%의 연료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 한화오션은 2030년까지 레벨4 완전 자율운항이 가능한 무탄소 추진 스마트십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율운항선박, 기술은 진전··· 보안·인력 양성은 과제
글로벌 경쟁 구도도 치열하다. 노르웨이 콩스버그는 세계 첫 완전 전기·자율운항 컨테이너선 '야라 비르켈란드'의 핵심 기술을 공급하며 원격운영센터(ROC) 기술에서 앞서 있다. 영국 롤스로이스는 LIDAR 기술 기반의 'Intelligent Awareness 시스템'으로 3D 환경 감지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핀란드 바르실라는 '스마트독' 자동 도킹 시스템으로 항만 자율운항 분야를 개척 중이다.
한국 빅3는 상용화 속도와 실증 성과에서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기술 격차도 존재한다. LIDAR, 레이더, 카메라를 통합한 다중 센서 융합 기술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이 앞서 있다. IBM이나 구글의 클라우드 머신러닝 플랫폼 활용에 비해 한국 기업들은 자체 AI 개발에 집중하고 있어, 방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자원 활용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사이버 보안도 풀어야 할 숙제다. AI와 IoT 기술이 집약된 자율운항선박은 해킹이나 랜섬웨어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 센서 정보가 교란되면 대형 해상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어 보안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원격 제어 전문가, AI 시스템 관리자 등 미래형 해상 인력 양성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
업계는 한국 조선 빅3가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고 국제 표준화를 선도한다면 2030년 143억~254억달러 규모 시장에서 50% 점유율 달성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032년 IMO MASS Code 강제화를 기점으로 자율운항선박이 표준이 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AI 알고리즘 고도화, 센서 융합 기술 완성, 5G/6G 통신망 활용이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가를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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