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 건조지 놓고 한미 갈등 격화 양상
기술 자립 vs 미국 의존··· 국방부 전략은?
미국 견제에 맞서는 한국, 핵잠 자립 외교전 돌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한국의 첫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공식 승인하면서 건조지를 두고 한미 간 신경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를 유력 후보로 언급하자, 한국 산업계와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술·안보·상징성 측면에서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건조 위치 선정은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니다. 향후 수십 년간 한국 해군의 전력 구조를 결정하고, 기술 자립도와 운영 독립성을 좌우하며, 나아가 한미 동맹의 성격까지 재정의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다. 한국 국내 건조의 기술적 가능성, 필리조선소 건조 시의 인프라 문제, 미국 규제 장애물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이 문제는 한국의 장기 방위력과 국방 자주권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 조선 기술력, 충분한 자체 건조 역량 확보
4일 정계와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국내에서 건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확보된 기술력에 근거한다. 한국은 장보고-III급 3700t급 디젤 잠수함을 독자 설계·건조하며 세계 12번째 잠수함 독립 건조국의 지위를 확보했다. 특히 한국 조선소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장의 70% 이상을 수주하고 있다. 영하 163도의 극저온 액화가스를 안전하게 운반하는 초고난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능력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선체 설계, 고강도 특수강 가공, 정밀 용접, 복잡한 배관 시스템 구축과 직결된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은 이미 개념설계까지 진행됐다”며 “정부에서 저농축 우라늄을 정상적으로 수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건조의 최대 장점은 장기적 운영 독립성 확보다. 필리조선소에서 미국 기술로 건조될 경우 원자로 연료 교체, 주요 부품 수리, 기술 업그레이드 등 모든 단계에서 미국 의존도가 심화돼 한국 해군의 작전 자율성이 제약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 건조는 한화오션이 유지보수를 자체 관리할 수 있어 국방 자주권 강화로 직결된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축적되는 원자로 운영, 방사선 차폐, 특수 소재 가공 등의 기술은 향후 한국의 원자력 산업과 첨단 조선 산업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원자로 기술인력을 임차해 국내에서 우선적으로 건조 작업에 착수하는 방안이 동북아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필리조선소 현실적 난관··· 인프라·인력 부족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면 상당한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다. 한화그룹이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330미터 드라이도크 2개를 보유하고 있으나 현재는 상선 건조에 주력하고 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필수적인 밀폐식 도크, 방사선 차폐 설비, 원자로 설치 장비, 핵물질 보관 시설이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시설 개선에 최소 3년 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력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미국 최대 군용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도 전문 인력 구인난으로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건조가 2~3년씩 지연되고 있다.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고급 용접, 방사선 차폐 설계, 원자로 설치 등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관련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들은 미국 국방부의 보안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한국인 기술자가 이를 취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법적 장애물도 만만치 않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제13조에 ‘폭발 또는 군사적 적용 금지’ 조항을 명시해 한국이 원자력을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제한한다. 한국은 미국 동의 없이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없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도 금지돼 있다. 협정 개정 시 한국에 허용될 우라늄 농축도는 20% 이하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5~7년마다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는 의미로 운영 비용 증가와 미국 의존도 심화를 초래한다.
협정 개정은 미국 의회 승인이 필요한데, 90일간의 검토 기간 동안 의회는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는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준수, 해군 원자력국의 감시, 비확산 의무 준수 등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미국서 단계적 건조 분담 최적 해답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최선의 전략은 한국과 미국에서의 단계적 건조 분담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4척 이상은 있어야 한다”고 밝힌 만큼, 오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제1단계로 첫 1~2척을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서 건조하되 미국 원자력국의 기술 자문과 인증 절차를 병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선체와 추진 시스템, 무장 체계는 한국이 독자 제작하고 원자로와 관련 핵심 기술만 미국에서 제공받는다. 이를 통해 한국 내 건조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기술 자립도를 확보한다.
2030년 이후 제2단계에서는 필리조선소 인프라 구축이 완료되면 추가 함정을 건조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조선산업 부활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캐나다나 필리핀 등 동맹국에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 모델은 한국의 기술 자립과 미국의 산업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며,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국 해군력 팽창·북한 SLBM 위협 우려
이날 서울에서 열리는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안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국방비 증액 등을 논의한다. 안 장관은 “한국군의 핵잠수함 도입이 미군의 안보 부담을 경감시킬 것”이라며 농축 우라늄 확보 문제에 관한 미국 국방부의 동의를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해군력 팽창과 북한의 잠수함 탄도 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하려는 지정학적 판단에 기반한다.
현재 중국은 6척의 진급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북한도 신포급 잠수함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확보하면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대잠전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작전 부담을 경감시킨다.
업계 한 전문가는 “결국 최선의 전략은 한국 국내 건조로 기술 자립도를 높이면서도 제한된 물량을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균형 잡힌 분담 체계”라면서 “핵추진 잠수함의 첫 건조가 최소 10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지금부터의 협상과 계획이 향후 한국 해군의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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