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달리는 배, 해운업계 ‘그린 혁명’ 신호탄
미쓰이상선, 하루 최대 17% 연료 절감 효과··· 온실가스 감축도
팬오션·HD현대중공업·한화오션, 로터세일로 해운 혁신 이끈다

일본 미쓰이상선의 윈드챌린저 시스템이 18개월 시범운항에서 최대 17% 연료절감 효과를 입증하면서 전 세계 해운업계가 풍력 추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인공지능생성 이미지
일본 미쓰이상선의 윈드챌린저 시스템이 18개월 시범운항에서 최대 17% 연료절감 효과를 입증하면서 전 세계 해운업계가 풍력 추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인공지능생성 이미지

전세계 해운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연료비'와 '탄소중립'이다. 배 자체도 무거운데다, 엄청난 중량의 화물을 싣고 가려면 상상을 초월한 양의 연료를 써야 한다. 게다가 선박 운항 과정에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춰야 하는 '탄소중립 압력'도 받고 있다. 

이런 해운업계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바람’이다. 일본 미쓰이상선의 윈드챌린저 시스템이 18개월 시범운항에서 최대 17% 연료절감 효과를 입증하면서 전 세계 해운업계와 조선업계가 풍력 추진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팬오션을 필두로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이 잇따라 풍력 기술 개발에 뛰어들며 ‘바람의 시대’를 열고 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미쓰이상선이 지난 2022년 10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윈드챌린저 시스템은 해운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석탄 운반선 ‘마츠카와마루’에 탑재된 이 시스템은 높이 20미터, 폭 8미터의 거대한 접이식 돛으로, 마치 SF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2024년 4월까지 18개월간 운항 데이터는 놀라웠다. 하루 최대 17%의 연료 절감 효과를 기록했고, 일본-호주 항로에서 5%, 일본-북미 서해안 항로에서 8%의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했다. 풍속 12m/s의 바람만 있으면 엔진 없이도 14노트로 항해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조작의 신속성이었다. 돛을 완전히 접었다가 펼치는 데 불과 8~9분, 90도 선회는 80초면 충분했다. 바람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높이와 폭이 조절되는 스마트 기능까지 갖췄다. 미쓰이상선은 이 성과에 힘입어 오는 2030년까지 25척, 2035년까지 80척에 윈드챌린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해운업계, 풍력 기술로 미래 선점 나서

한국 해운업계에서는 팬오션이 가장 먼저 풍력의 바람을 탔다. 지난 2021년 5월 브라질 발레사와 협력해 32만 재화중량톤(DWT)급 광석 운반선 ‘시저우샨(SEA ZHOUSHAN)’호에 로터세일 시스템을 설치했다. 높이 24미터, 지름 4미터의 거대한 원통 5개가 갑판 위에 우뚝 서는 장면은 마치 거대한 공장 굴뚝이 연상된다. 

로터세일은 마그누스 효과를 활용한 기술이다. 원통형 기둥이 바람으로 회전하면서 압력차를 만들어 추진력을 생성한다. 팬오션은 이를 통해 6~8%의 연료 절감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뒤에는 정교한 과학이 숨어있다.

조선업계 빅3도 가세했다.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8월 국내 최초로 독자 개발한 ‘하이로터’의 설계승인을 받았다. 기존 벨트방식 대신 감속기어 방식을 적용해 구동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한화오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남 거제에 높이 30미터, 직경 5미터의 세계 최초 ‘로터세일 실증센터’를 구축했다. 이론을 넘어 실제 성능을 검증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글로벌 바람 전쟁, 기술 다양성이 경쟁력”

윙세일은 전통적인 돛 형태로 날개의 압력차를 이용해 추진력을 만든다. 로터세일은 회전하는 원통으로 마그누스 효과를 활용한다. 카이트는 연처럼 하늘에 띄워 패러글라이딩 원리를 응용한다.

미국의 곡물 대기업 카길은 2024년 9월 ‘윈드윙’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선보였다. 영국 BAR 테크놀로지스와 노르웨이 야라 마린이 개발한 이 시스템은 37.5미터 높이의 접이식 금속-유리 복합소재 돛이다. 카길 관계자는 “벌크선 ‘픽시스오션’에 장착돼 중국 상하이에서 싱가포르까지 성공적으로 운항했다”며 “탄소배출량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각 기술마다 고유한 장점이 있다는 점이다. 윙세일은 대형화가 가능하고, 로터세일은 작은 크기 대비 높은 추진력을 낸다. 카이트는 선박에 설치할 고정 구조물이 적어 기존 선박 개조가 상대적으로 쉽다. 선박의 용도와 항로에 따라 최적의 기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HD한국조선해양이 친환경 선박과 차세대 추진 시스템, 디지털 혁신 기술에서 중국 조선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HD한국조선해양이 친환경 선박과 차세대 추진 시스템, 디지털 혁신 기술에서 중국 조선사들과의 기술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바람이 멈추면 선박도 멈춘다? 풍력 해운 딜레마

풍력 추진 기술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풍력 추진 기술의 아킬레스건은 바람의 불안정성이다. 바람이 약한 항로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영국 UCL의 트리스탄 스미스 연구원은 “갑판 공간이 제한된 선박이나 바람이 불리한 항로에서는 실용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제성도 걸림돌이다. 선박 개조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길은 윈드윙 설치비용을 최대 10년 안에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연료비 절감 효과가 장기적으로 초기 투자를 상쇄한다는 계산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확한 성능 측정이다. 선박의 항로, 돛의 개수, 바람의 세기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량적 검증 체계가 필수다. 각 업체들이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 이유다.

해운업계의 탈탄소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국제해사기구 연구에 따르면 해운업계는 매년 석탄화력발전소 283개가 내뿜는 것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전 세계 선박 연료의 99.8%가 화석연료인 상황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

메탄올이나 암모니아 같은 대체연료는 여전히 비싸고 상용화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풍력은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BAR 테크놀로지스의 존 쿠퍼 최고경영자(CEO)는 “풍력은 한계 비용이 거의 없는 연료”라고 강조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람으로 달리는 배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한국 해운업계도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대응해야 한다”며 “풍력 추진 기술이 단순한 연료비 절감을 넘어 해운업계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적 솔루션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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