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이재형 기자] 정부에서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예산이 올해 20조원을 돌파했다. 내년 R&D 예산안도 24조원으로 무려 17%나 뛴다. 국회 예결위를 거치면 깎이겠지만 그래도 R&D 예산 10%대 증액은 파격적이다. 최근 5년간 R&D 예산안 증가율은 적게는 1%, 많은 해는 6% 대에 그쳤었다. 

정부가 국가 R&D 비중을 높인 것은 물론 반가운 소식이다. 정보통신 기술을 중심으로 전자, 전기 산업은 물론, 제조‧농업‧수산‧도시 등 사회 전 분야가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 기술 가능성에 대한 투자는 너무나 당연하고 사실 늦은 감마저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는 중국에서 전문 대학원을 이미 35개 확보하고, 또 앞으로 100개까지 늘릴 계획인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세 곳뿐이다. 그것도 이달 개설해 겨우 걸음마 수준이다.

R&D 예산 증액과 함께 연구 효율을 높이고자 지난해 12월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연구개발 혁신을 위한 특별법’도 연구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국가 R&D’를 모토로 만들어진 이 법은 ‘연구 사업에서 행정만 전담할 인력을 외부에서 지원’,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1년 단위 평가 폐지’, ‘정부부처마다 달랐던 연구개발비 사용기준 통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이 법은 국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 23일 열렸던 대토론회에서 법안에 대한 국내 대학 교수,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반응은 ‘나쁘진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공들인 것에 비해 정작 연구현장에서 가려운 곳은 긁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질적인 문제였던 사업비 지연 지급 문제다.

어떤 R&D 사업이든 연구 시작 시점과 평가 시점이 정해져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단위 연구라면 늦어도 1월에는 돈이 입금돼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부처에서 연구재단, 협회, 진흥회 등 기관을 거쳐 연구자에게 사업비가 지급되기까지 승인 절차 때문에 제때 지급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수개월 지연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버렸다. 물론 재원이 민간 기업에서 나오는 사업은 이런 일이 없다.  

기업이 사업을 받는 경우엔 먼저 자비로 충당하고 나중에 지원금으로 메꾸면 된다. 이마저도 자본 여건이 어려워 힘든 기업도 많다. 유휴 재원이 없는 대학은 오죽할까. 학교 현장의 말을 들어보면 핵심 장비가 있는 곳은 미진하게나마 진행하고, 좀 더 여유가 있는 학교는 부담스럽지만 교비로 일부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 답이 없는 연구실은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 연구 기간 몇 개월을 놀면서 보내고 있다.

연구비가 늦게 지급되면 연구 품질에도 2차, 3차 폐해가 불거진다. 연구비가 없어 늦게 시작한 만큼 평가 전까지 기간이 촉박해지고 그만큼 숙고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실험 데이터를 뽑기 전에 평가 시기가 임박하면 날림 자료를 제출해 일단 모면하기도 한다. 국민 세금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쓰이고 있다.

정부도 국내 R&D가 단기 연구에 치우치고 정작 필요한 연구는 사장되는 문제는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 대안으로 사업 평가 기간을 1년으로 고정하던 방식에서 연구 성격에 따라 단계별로 기간을 나눠 평가한다고 했다. R&D 품질이 부실한 게 정말 기간 문제일까? 기간이 어떻든 제때 시작할 여건이 안 되면 시간에 쫓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연구 행정 지원도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서류 잡무로 잃는 시간이 며칠이라면 연구비 지연으로 날리는 시간은 수개월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R&D 예산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연구 성과는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연구자들이 태만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정말 R&D 품질을 개선하고 싶다면 제대로 경쟁할 환경은 만들어 놓고 정책을 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silentrock91@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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