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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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기자는 한 달 전 한 국내 주류업체가 실시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했다. 맛과 향에만 의존해 하이트, 프리미어OB, 하이네켄, 칭따오, 밀러 등 5종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을 맞히면 되는 테스트다. 업체 직원은 언뜻 보기엔 다를게 없어 보이는 맥주 다섯 잔이 나란히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테스트 대상인 다섯 가지 맥주는 모두 같은 아메리칸 페일 라거다.   

다른 아메리칸 페일 라거보다 맛도 연하고 탄산도 약한데 넘기고 나면 콩의 향이 올라오는 맥주를 찾는 데 집중한 끝에 4번 맥주를 골라냈다. 1번은 며칠 전 마셨던 맥주와 맛이 비슷했다. 운이 따라준 덕에 두 가지 맥주를 맞히는 데 성공했다. 4번은 하이네켄, 1번은 칭따오였다.

규칙을 엄격히 따르자면 같은 테스트틑 한 번 더 통과해야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해당 업체 직원은 “1차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람의 비율도 낮다”며 “사람들은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맛이 떨어지는 맥주를 찾는 방식으로 접근하다가 실패하곤 한다”고 말했다. 

한 국내 주류업체가 실시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했다. (김형수 기자) 2019.9.14/그린포스트코리아
한 국내 주류업체가 실시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했다. (김형수 기자) 2019.9.14/그린포스트코리아

탈락률이 높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인식은 주류업체들이 이같은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하는 이유기도 하다. 눈을 가리고 마셔보면 국산 맥주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국산 맥주도 수준이 높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맛의 문제가 아니라 맥주 종류의 문제’라는 논리가 따라붙는다. 카스, 하이트 등 국내 주류업체들의 주력 맥주는 아메리칸 페일 라거인데, 아메리칸 페일 라거 자체가 원래 다른 맥주보다 맛도 향도 약한 맥주라는 주장이다. 아메리칸 페일 라거보다 풍부한 맛과 향을 지닌 IPA, 스타우트, 사우어에일 등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말도 덧붙이기 일쑤다.

맞는 말이다. 아메리칸 페일 라거는 본래 그런 맥주다. 아메리칸 페일 라거 일색인 한국 맥주에 싫증을 느꼈거나 에일 계열의 국산 맥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장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에서 ‘아메리칸 페일 라거가 아닌 한국 맥주를 마시고 싶다’로. 칭따오만 해도 익숙한 초록색 캔에 든 라거를 비롯해 옅은 베이지색 캔에 든 밀맥주, 검은 캔에 든 스타우트 등 그에 비견되는 한국 맥주보다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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