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저임금 보다 못한 최저임금은 '마시멜로 맛' 
[기자수첩] 최저임금 보다 못한 최저임금은 '마시멜로 맛' 
  • 김형수 기자
  • 승인 2019.07.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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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제공) 2019.7.21/그린포스트코리아
(Pixabay 제공) 2019.7.21/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린포스트코리아 김형수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16.4%, 올해 10.9%를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였던 인상률은 2.9%로 푹 꺼졌다. 최저임금 인상이 그 전부는 아니지만 소득주도성장을 내건 현 정부에서 일어난 일이라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최저임금이 최저임금답지 못한 상황에서 인상폭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은 더 컸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79만5310원으로 180만원에 조금 못 미친다. 174만5150원이었던 올해보다 5만원 정도 올랐다. 노동자 한 사람이 삶을 이어 나가기에도 부족한 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 15일 공개한 ‘비혼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보고서(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하지 않은 근로자 한 명의 월평균 생계비는 201만4955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내년에 지난해(7530원)보다 1060원 오른 시급 8590원을 받으며 한달을 일해도 매달 22만원 가까운 적자를 보는 셈이다. 

179만5310원은 극단적인 값에 영향을 크게 받는 전체 평균 실태생계비가 아닌 중위 실태생계비(182만6489원)에도 3만1179원 모자란다. 중위 실태생계비란 생계비를 가장 적게 쓰는 노동자부터 가장 많이 쓰는 노동자를 한줄로 세워놓은 뒤 한가운데 서있는 노동자를 골라 그 사람이 생계비로 얼마를 쓰는지 나타낸 값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면 중간 정도의 씀씀이를 지녔어도 매달 적자를 본다는 얘기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물건을 밑지고 파는 이상한 장사꾼이다. 노동시장에 나가 이윤을 챙기기는커녕 원가보다도 낮은 값에 노동력이란 상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원가도 안 되는 돈을 내고 노동력을 사다쓰며 좋아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노동력은 노동자인 사람이 자녀를 낳아야 존재할 수 있는 특수한 성질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보면 비혼 단신 근로자의 36.0%는 29세 이하고 30대는 25.4%를 차지한다. 다음 세대의 사용자에게 노동력을 팔 노동자를 낳아야 하는 세대의 비중이 60%를 넘는다. 자기 하나 챙기는 것도 벅차 숨을 헐떡이는 이들이 과연 자식을 낳을까.

그럼에도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이들은 눈앞의 이익을 좇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기구로 설립된 자유기업센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유기업원의 최승노 원장은 지난 9일 JBTC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 “약 4000원에서 5000원 정도의 최저임금이 적합한 임금수준”이라며 “정부가 대신 결정하는 임금구조이기 때문에 경제현상의 현실성에서 상당히 괴리된 상태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이 결정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0년 전인 2009년의 최저임금이 4000원이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00만원도 안 된다. 그 누구보다도 시장경제 질서를 중시해야 할 사람이 공개적으로 상품을 손해를 보고 팔라는 시장 질서에 어긋나는 주장을 늘어놓은 셈이다. 자유기업원 홈페이지에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교육, 홍보, 계몽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독립된 기관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설립취지가 명시돼 있다.

지금은 부정당한 '마시멜로 실험'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마시멜로 실험 연구진은 당장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인내심을 발휘한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학업성취도, 건강, 소득 등의 측면에서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뛰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이같은 마시멜로 실험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내용의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발표됐다. 부모의 학력이나 가정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마시멜로 실험에 한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원하면 언제든지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는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와 언제 마시멜로를 반쪽이라도 먹을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는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인내심 차이를 미래의 성공과 곧바로 결부시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생계를 꾸리기에도 부족한 최저임금이 너무 많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사람들은 이런 지적에서 빗겨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언제든지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지금도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 앞세운 시장 경제 원칙을 등한시한 채 쉼없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만큼 내일의 노동자가 사라지고 있다.

alias@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