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고시 2주만에 대응…토지주 7250억 손실 주장 vs 유네스코 우려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일대를 최근 국내법에 따른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며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가 최고 145m 고층 빌딩 건설을 허용하는 계획 변경을 고시한 지 불과 2주 만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세계유산 분과는 전날 '종묘 세계유산지구 신규 지정 심의' 안건을 가결했다. 종묘를 중심으로 총 91필지, 19만4089.6㎡ 규모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됐다.
◇20년 표류 재개발 vs 문화유산 보호
세운4구역은 1968년 지어진 세운상가 일대로, 2006년부터 20년째 재개발이 표류 중이다. 종묘와 약 180m 떨어진 이 구역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10회 이상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심의를 거쳐 높이 54~71m로 승인받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4구역 재개발 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최고 높이를 종로변 55m→98.7m, 청계천변 71.9m→141.9m로, 용적률을 660%→1008%로 상향하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문화재 보호구역(100m) 밖에 위치해 법적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법원도 올해 서울시가 문화재 인근 고층 건축물 규제 조항을 삭제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은 즉각 반발했다. 10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허민 국가유산청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함께 종묘 일대를 직접 점검하고 관계부처에 법과 제도 보완을 지시했다. 김 총리는 "문화와 K관광이 부흥하는 시점에 종묘 바로 앞에 고층 건물을 짓는, 문화와 경제, 미래 모두를 망칠 수 있는 결정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에는 세운4구역 토지주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세운4구역이 종묘 문화재보호구역에 속해있지 않음에도 과도한 규제로 누적 채무가 7250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수치는 토지주협의회 산출 근거로, 정부나 공적기관의 공식 검증은 없는 상태다.
◇세계유산법' 꺼내든 국가유산청…실효성 논란
13일 국가유산청이 전격적으로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다. 서울시 계획 고시 후 단 3일 만에 1년간 미뤄왔던 지정을 단행한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2024년 11월 시행된 '세계유산법'을 근거로 들었다. 이 법은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개발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12월 중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강력하게 요청할 방침이다.
유네스코는 올해 4월 등 여러 차례 서울시에 유산영향평가를 요청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공식 거부는 하지 않았으나, 명확한 회신이나 영향평가 착수 등의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유산영향평가와 관련된 하위 법령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평가의 강제성이나 적용 대상을 두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해석이 상이하다. 서울시는 현재로서는 평가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고,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법에 따라 평가 요청 및 개발제한이 가능하다고 본다.
서울시는 맞소송을 준비 중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 총리에게 "종묘 앞에 도시의 흉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온당한가"라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김포 장릉 전례와 유네스코 우려
이번 갈등은 3년 전 김포 장릉 '왕릉뷰 아파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21년 문화재청은 장릉 인근 아파트에 공사중지를 명령했으나, 법원은 3심 모두 건설사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사 중단으로 입을 재산상 손해는 막대하지만, 철거로 얻을 이익은 미미하다"고 판시했다.
당시 문화재청은 조례상 보존지역 밖 개발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었다. 2022년 감사원은 문화재청이 행위기준 변경을 지자체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2022년 4월 세계유산 영향평가 도입을 발표했고, 2024년 11월 세계유산법이 시행됐다.
종묘 사건은 장릉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장릉은 2009년 세계유산 등재 후 15년간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되지 않았다. 종묘는 1995년 등재 후 30년간 미지정이었다. 두 경우 모두 합법적 절차를 거친 개발 계획이 나온 뒤 뒤늦게 규제를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제적으로는 경관 훼손을 이유로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사례가 있지만(영국 리버풀, 독일 드레스덴 등), 국내에서는 보호구역 밖 개발만으로 세계유산 등재가 취소된 전례는 아직 없다. 종묘 사례 역시 향후 국제기구와 정부의 추가 평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종묘가 선례가 되면 서울의 다른 유적지 주변에도 무분별한 고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실제 개발이 세계유산 경관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