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은 일시적 조치…2026년 이후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 커
재생에너지 보급 과정서 원가 요금 반영한 체계 개편도 주목

정부와 한전이 재생에너지 보급 및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 전력요금 현실화에 대해 고심을 하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정부와 한전이 재생에너지 보급 및 송전망 확충 과정에서 전력요금 현실화에 대해 고심을 하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재생에너지 확대가 본격화되면서 한전의 전기요금 ‘현실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4분기 요금이 동결됐지만, 막대한 재생에너지 투자비와 송전망 확충 비용이 불가피해 장기적으로 요금 인상 압박이 커지면서 정부와 한전 모두 내부적으로 전기요금 개편을 고심하고 있다.

4분기 요금 동결…“2026년 1분기 인상 유력”

5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9월 올해 4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1kWh당 5원으로 동결하기로 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2026년 1분기부터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과 대규모 재생에너지 보급, RE100 산업단지 조성 등은 모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사업이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정상화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8년 29.2%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이에 맞춰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 과정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비용이 발생해 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 역시 여전히 높다.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단가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포함 시 태양광은 1kWh당 200원대, 해상풍력은 400원대로 한전의 평균 조달단가(134.8원)를 크게 웃돈다.

한전은 2038년까지 송·변전 인프라에 72조8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여기에 이미 200조원을 넘긴 총부채와 연간 3조원에 달하는 이자 부담까지 더해져 재무 여건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전기요금 현실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오는 2027년 말까지 한전의 회사채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한전이 발행할 수 있는 사채 규모는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로 정해져 있다. 한전 이사회도 "2027년까지 사채 한도를 법정 기준(2배) 내로 줄이려면 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국회 "요금 현실화 불가피"…거버넌스 개편도 거론

정부 역시 재생에너지 확충 과정에서 전기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국민에게 이를 솔직히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산업부문에선 에너지효율 저감 분야에 투자해야 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대규모 투자는 단가에 반영된다. 이런 비용을 요금 인상 없이는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국감에서 "러우 전쟁 당시 에너지 수급 과정의 어려움이 곧바로 국민 전기요금으로 전가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전이 스폰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부채가 과도하게 쌓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기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전기요금 인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료비 연동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국회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시대적 흐름이므로 전기요금 체계를 원가주의 원칙에 따라 재구조화해야 한다"며 "정치권이 요금 결정을 좌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된 기구가 시장 원리에 맞춰 결정하는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 절반 "탄소중립 위해 인상 수용 가능"…하지만 부담 여전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조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지하는 국민 중 절반가량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전기요금 인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재생에너지 초기 비용 대비 사회경제적 이익이 크며 중장기적으로 탄소중립 규제로 향후 화석연료 비용이 비싸질 경우 재생에너지 비용이 더 저렴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는 초기 설비 투자 이후 연료비 부담이 없어 장기적으로 발전단가가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이미 미국, 유럽 주요 국가는 태양광 패널 가격 하락으로 화석연료 발전과 비슷한 수준의 그리드 패리티를 달성했다.

김성환 장관도 "국제에너지기구(IEA) 등에서 이미 풍력과 태양광을 가장 저렴한 에너지로 평가하고 있다"며 "정부의 육성정책과 기술발전이 뒷받침되면 국내 재생에너지 전력도 충분히 낮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은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로 대규모 발전 단지 조성이 어렵고, 인허가 지연, 송전망 부족, 토지 사용 규제 등 제약이 뒤따라 재생에너지 전력 단가가 당분간은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상승으로 직결돼 정치적 부담이 크다. 내년 지선을 앞두고 정부가 요금 인상을 선뜻 단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이전 정부도 여론을 의식해 산업용 요금만 조정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기요금 인상은 리스크를 피하기 어렵다"며 "에너지 고속도로와 RE100 산업단지 구축은 계통 안정화 비용을 수반해 한전과 정부 모두 요금 인상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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