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러 P/E 40배 돌파… 美 “장기 수익률 낮아질 수 있다” 경고
국내 증시도 흔들려… “반도체 랠리, AI 효과인지 재점검 필요”

최근 국내 증시가 이틀 연속 하락하면서 과열 국면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 거래일(4121.74) 대비 117.32포인트(-2.85%) 하락한 4,004.42에 마감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하락하며 이 기간 지수는 총 231.47포인트 밀렸다.
미국과 유럽 증시가 여전히 고점 부근을 유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증시 전반의 고평가 논란이 동시에 부상하며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인 매도세가 유입되면서 국내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발 경계 신호 또한 거세지고 있다. 미국 주요 경제매체들은 장기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이 과거 어느 시점보다 높아졌다는 분석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가 고안한 장기평가 지표인 ‘실러 P/E’ 비율이 역사적 고점 수준까지 치솟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러 P/E는 물가를 반영한 10년 평균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장기 수익률 전망에 활용된다. 일반 PER(주가수익비율)이 현재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실러 P/E는 향후 투자 수익률이 얼마나 낮아질지 혹은 높아질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평가된다.
실러 P/E는 1990년 이후 평균 약 27배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치가 40배를 넘어섰다.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AI 기술 발전이 기업 생산성을 급격히 개선할 경우 현재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될 여지는 있지만, 평균 수준으로 되돌려질 경우 주가가 크게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미국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실적 개선 속도보다 빠르게 상승한 점은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투자리서치사 리서치 애필리에이츠는 실러 P/E 기반 모델을 통해 자산군별 10년 기대수익률을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대표 성장 기술주의 향후 10년 실질 수익률은 –1%대로 전망됐다. 반면 미국 대형 가치주는 1%대 초반, 소형주는 4%대 중반으로 예상됐다. 지역별로는 유럽과 신흥국 주식의 기대 수익률이 각각 약 5% 수준으로 나타나 미국 성장주보다 매력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자금의 지역 분산 필요성이 보다 커진 셈이다.
유럽 시장에서도 AI 기대가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신중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글로벌 자금이 미국 대형 기술주에 집중되며 시장 쏠림이 심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투자자들은 가치주·중소형주·신흥국으로 포트폴리오 재조정에 나서는 분위기다.
반면 낙관론도 여전히 남아 있다. AI 기술이 실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경우 높은 밸류에이션은 일정 부분 선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향후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AI 반도체 수요 증가 등 산업 구조 변화가 본격화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증시에서도 단기 낙폭 이후 방향성을 두고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AI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실제로 확인되는 시점이 글로벌 증시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향후 1~2년 동안 AI 투자에 대한 기대가 기업 실적으로 연결되는지 여부가 국내외 주식시장 전반의 투자심리에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정은 미국발 AI 고평가 우려가 국내 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결국 많이 오른 업종을 중심으로 차익 매물이 나온 흐름”이라며 “3900선은 12개월 선행 기준 PER 10배 초반 수준으로, 현재 밸류에이션이 과도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 반도체 주가를 끌어올린 동력이 정말 AI였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반도체 랠리의 근간은 메모리 업황 회복 사이클이고, 기업 실적 전망도 여전히 상향되고 있는 만큼 구조적 추세가 꺾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증시는 분위기와 여론이 주가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고평가 논란과 AI 관련주의 수익성 우려가 시장 심리를 지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동성이 커질 수 있는 국면이지만, 반도체 등 AI 하드웨어와 하이퍼스케일러처럼 실적과 수익성이 확인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분할 매수 대응을 고려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