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추가 논의 필요”… 11월 유엔 제출 계획을 목표로 일정 재검토
국민 의견 수렴 기간 가졌지만 시민사회·산업계 이견차이 명확
철강·자동차업계도 “기술 상용화 시기 고려해야” 현실론 제기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가 잠정 연기됐다./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미지=필사베이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가 잠정 연기됐다./그래픽=그린포스트코리아, 이미지=필사베이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가 잠정 연기됐다. 당초 16일로 예정됐던 발표는 부처 간 조율이 끝나지 않아 일정이 미뤄졌으며, 최종 발표 시점도 아직은 미정인 상황이다. 

이번 연기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감축 목표를 둘러싼 산업계와 시민사회 간 첨예한 의견 차이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제시한 2018년 대비 감축률 ▲40% 중후반 ▲53% ▲61% ▲63% 등 네 가지 안을 두고 사회 각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 2035 NDC 최종안 발표 잠정 연기 

2035 NDC 최종 토론회 및 최종안 발표의 잠정 연기를 결정한 정부. /2035 NDC 대국민 의견 수렴 플랫폼 캡처
2035 NDC 최종 토론회 및 최종안 발표의 잠정 연기를 결정한 정부. /2035 NDC 대국민 의견 수렴 플랫폼 캡처

정부는 지난 9월 1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총 7차례에 걸쳐 '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를 진행한 뒤 16일 2035 NDC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19일 총괄토론을 시작으로 전력, 수송, 산업, 건물, 농축산·흡수원·순환경제 5개 부문별 토론(9월 23일~10월 2일)은 순서대로 진행됐으나 14일 최종 종합토론회가 잠정연기되더니 결국 2035 NDC 최종 발표도 무기한 연기됐다.

일정의 연기 사유는 2035 NDC 목표 설정을 위한 정부 및 관련 기관간의 정무적 합의가 최종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기후에너지부 기후전략과 관계자는 “NDC 최종안 발표를 16일공식화한 것은 아니고 예정을 했으나 부처간의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일정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파리협정에 가입한 당사국이 스스로 정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다. 파리협정에 가입한 당사국들은 2020년 '2030 NDC' 제출을 시작으로 5년을 주기로 NDC 수립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대국민 토론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11월 초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 NDC를 제출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번 최종 토론회 및 최종안 발표 연기로 인해 그 목표가 이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에 빠졌다. 기후에너지부 기후전략과 관계자는 “아직 최종 토론회 및 최종안 발표에 대한 시기는 미정이지만 당초 계획인 11월 초에 2035 NDC를 UNFCCC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여전한 의견차이, 시민사회 “61% 이상 감축해야” 

부처간의 의견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2035 NDC 목표치를 두고 이해관계자간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2035 NDC 목표치를 놓고 2018년 대비 ▲40% 중후반 ▲53% ▲61% ▲63% 등 4가지 감축안을 놓고 의견수렴을 진행해 왔다. 환경‧시민 기관 및 단체 등에서는 기후위기 대응과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35 NDC는 61% 이상 감축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1.5℃ 목표 달성을 위해 최소 61% 이상 감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플랜1.5 등 주요 단체들은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건 국가의 책무”라며 “국제사회 평균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목표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운영한 ‘2035 NDC 대국민 의견수렴 플랫폼’에서도 시민 응답자의 다수가 60% 이상 감축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플랜1.5는 “GDP·인구·배출량을 종합해도 67% 감축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며 헌법재판소의 판단 역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목표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는 산업계의 반발을 “이익 논리”로 규정하며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맞서고 있다.

◇ 산업계 "48%도 과도… 현실성 없는 목표치 업계 경쟁력 떨어트릴 것"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시민사회와 산업계.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2035 온실가스감축목표를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시민사회와 산업계.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산업계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기술 상용화 시점과 현장 여건을 무시한 목표는 기업 생존을 위협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산업부문 토론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48% 감축도 사실상 달성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잇따라 내놨다.

남정임 한국철강협회 실장은 “철강산업의 핵심 감축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은 2037년 이후에야 상용화가 가능하다”며 “현실을 외면한 목표는 산업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정부가 제시한 시나리오 중 가장 적극적인 안이 48% 수준”이라며 “의욕만 앞세운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감축률 논의에 앞서 산업 전환 전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NDC 목표는 배출권거래제와 직결된다”며 “2035년 이전 실현 가능한 수단과 불가능한 수단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는 자동차 업계에서도 나왔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정부가 제시한 전기·수소차 보급 목표가 “비현실적”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정부는 2035년 기준 등록차 2800만 대 중 840만~980만 대를 무공해차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예고한 것에 따른 반발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국내 부품기업의 전환율이 20%에도 못 미치는데 840만 대는 달성 불가능한 수치”라며 “급격한 전환은 산업 생태계 붕괴와 고용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실적 대안으로는 전체 차량의 20% 수준인 550만~650만 대와 하이브리드차 활용을 제시했다.

업계는 유럽의 사례를 들어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내연차 퇴출을 처음 공식화한 유럽연합(EU)조차 현실적 여건을 이유로 속도 조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처럼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서 정부는 부처 간 추가 협의를 거쳐 2035 NDC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시민사회와 산업계의 입장 차가 워낙 커 발표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감축 목표는 필요하지만 기술과 산업 현실을 무시한 수치는 정책 실패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민사회는 “목표 후퇴는 기후위기 대응 포기와 다름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2035 NDC 논의는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생존’이라는 두 축의 정면 충돌로 귀결되고 있다. 정부의 최종 선택에 산업계와 시민사회가 모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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