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는 누적되는데, 보상은 제자리
수천억 IT투자에도 시스템 불안 여전

키움증권을 비롯해 토스증권,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증권사에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접속 장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투자자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오류를 넘어 반복적인 시스템 불안정이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다.
2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미 다수의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지난 5월 12일 토스증권 MTS가 약 8분간 접속 불가 상태에 빠졌고, 키움증권은 지난달 넥스트레이드 개시일과 정치적 이슈가 맞물린 시점에 주문 체결 지연이 연이어 발생했다. 메리츠증권 역시 지난달 미국 정규장 개장 직후 HTS와 MTS가 동시에 마비되어 복구까지 1시간 이상 소요됐다. 대부분의 사고가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간대에 집중되면서, 투자자들은 실질적인 금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장애가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의 보상 체계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이다. 일부 증권사는 장애 시간대 체결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피해를 입증하고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 유선 주문 가능 여부나 주문 폭주 등을 이유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보상은커녕 장애 사실 공지조차 늦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증권사 전산장애는 2020년 60건에서 2024년 94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으며, 피해 금액은 최근 5년간 누적 210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IT 운영비는 5800억 원에서 9700억 원으로 늘었지만, 장애 예방 효과는 체감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반응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키움증권에 대한 수시검사에 착수하고, 주요 증권사 최고정보책임자(CIO) 회의를 열어 장애 원인과 대응 체계 점검에 나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개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외주 위주로 구성된 IT 인프라 구조, 내부 위기 대응 체계 미비, 투자자 보호보다는 손실 회피에 급급한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매년 수천억 원대 IT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장애가 줄지 않고 있다면, 시스템 자체가 잘못 설계된 것”이라며 “전산사고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증권사가 고객을 얼마나 신뢰하고 보호하려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