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 최대 95.8%··· 국내 비축량 55일 치 뿐...
‘희소금속 산업발전협의회’ 출범··· “희소금속 수출통제 대응”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희소금속을 둘러싼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이미지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희소금속을 둘러싼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 이미지

최근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희소금속 품귀현상을 일으키며 국내 첨단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폭탄을 맞은 중국은 희소금속 수출통제를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희소금속 확보 전략이 시급한 상황이다. 

희소금속은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며 첨단 산업의 성능과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한국은 원료·기초소재 대다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취약하다. 희소금속 수출 통제로 친환경 산업의 핵심인 배터리, 한국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 최근 주목받고 있는 K-방산 등 한국 첨단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주의가 심화되면서 한국은 리튬, 코발트, 인듐, 갈륨 등 첨단 산업의 필수 원료인 희소금속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정에서 희소금속 수출을 제한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희소금속은 반도체, 전기차, 기계·항공, 정유·화학 등 첨단 및 주력산업의 필수 소재다. 특히 안티모니와 같은 희소금속은 배터리사의 합금연 제조, 반도체, 자동차 강판, 특수강, 태양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중국, 주요 희소금속 수출통제 강화··· 대(對)중국 수입 의존도 최대 95.8%

중국은 이미 갈륨, 게르마늄, 안티모니 등 주요 희소금속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리튬 추출용 흡착제 수출 중단과 희토류 산업 보호조치 강화 등 자원 무기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이 수출 통제에 나선 텅스텐, 몰리브덴,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의 희소금속 중 일부의 경우 한국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최대 95.8%에 달한다.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실리콘, 희토류, 텅스텐, 게르마늄, 갈륨 등 반도체 핵심 원자재 5개에서 중국 의존도는 실리콘 75.4%, 게르마늄 74.3% 등으로 높은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희소금속 비축량은 정부 목표치인 100일분의 55.3%에 불과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희소금속 13종의 평균 비축량은 57.5일분으로, 미래 산업인 이차전지에 필수적인 리튬은 30일분에 그쳤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금속의 경우 스트론튬(2.7일분), 실리콘(19.2일분) 등 목표 대비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희귀금속 비스무트 가격이 급등하며 반도체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인공지능 이미지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희귀금속 비스무트 가격이 급등하며 반도체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인공지능 이미지

희소금속 공급 불안은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비스무트 가격은 중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지난 2월 18일 기준 파운드당 8.25달러로 38% 상승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듐은 올 들어 2월 5일까지 ㎏당 380달러에서 400달러로 5.3% 올랐으며, 작년 1월과 비교하면 53.9% 상승했다.

첨단산업인 배터리ㆍ반도체ㆍ방산 등 위기 

전기차 확산으로 핵심 전략산업이 된 배터리 분야는 희소금속 수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배터리 양극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튬이 필수적이며, 양극재가 부식하거나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코발트, 니켈, 망간 등의 금속이 사용된다. 그러나 국내 리튬 비축량은 6일치에 불과하여 정부 목표인 100일치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배터리 산업에 필수적인 코발트는 12일치, 갈륨은 40일치 등 대부분의 희소금속 비축량이 목표와 거리가 멀다. 이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 배터리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져 자칫 K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도 피해가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다양한 희귀금속을 사용하는데, 가격 상승은 생산 비용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원자재 비용 증가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희귀금속의 공급 제한은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희소금속은 방위산업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F-35 스텔스 전투기에는 417kg, 이지스함에는 2358kg,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에는 4172kg의 희소금속이 사용된다. 스텔스 기능을 위한 인듐, 탄두 보호재로 쓰이는 베릴륨 등은 첨단 무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방산업계가 가장 신경 쓰는 희소금속은 텅스텐과 비스무트로, 이러한 희소금속 가격 상승은 K방산의 핵심 경쟁력인 '저렴한 가격' 메리트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중국이 희소금속의 90%를 공급하고 있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전략적 취약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정부, 공급망 안정화에 총력··· ‘희소금속 산업발전협의회’ 출범

이에 산업계와 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충북 오송에서 ‘희소금속 산업발전협의회’가 출범해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속에서 국내 희소금속 공급망 안정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협의회는 전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심화와 급변하는 대내외적 환경에서 국내 희소금속 공급망을 진단하고 희소금속 연관 기술분석을 통해 글로벌 희소금속 수출통제에 대응할 계획이다.

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탄탈륨, 규소, 주석, 리튬, 코발트, 망간, 니켈 등 15종의 희소금속에 대한 공급망 및 연관 기술분석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고려아연이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등 희소금속을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안티모니의 경우 연간 3600t을 생산하고 있다. 올해는 4000t 이상 생산해 미국 등에도 수출할 예정이다. 

이제중 고려아연 최고기술책임자(CTO) 부회장은 “전략광물의 안정적 공급은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라며 “자원안보에 일조하는 과제를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원자재 확보가 곧 국가 경쟁력”··· 희소금속 공급망 다변화 시급

전문가들은 ‘제2의 요소수 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희소금속 확보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부는 비축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출자금을 현재보다 크게 늘려야 하며, 비축기지 확충도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광해광업공단의 희소금속 비축기지 포화도는 이미 98.5%에 달해 추가 확보를 위한 시설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나성화 산업부 산업공급망정책관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희소금속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라며 “협의회가 희소금속의 국내 확보부터 생산·유통까지 공급망 전반을 점검하고, 산업의 취약점을 분석해 대안을 마련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자원 확보·비축뿐만 아니라 대체·저감·순환으로 대표되는 연구개발, 희소금속 데이터베이스 인프라 구축, 기업지원 제도정비 등을 통한 핵심기업 육성이 중요하다”며 “희소금속 공급 불안은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 경제와 안보의 문제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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