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국 기업에 ‘우회 수출 금지’ 경고
한국, 희토류 대부분 중국에 의존··· 첨단산업 직격탄
"공급망 다변화로 위기 대비해야"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중국이 한국 기업에 ‘우회 수출 금지’ 경고를 보내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국은 첨단산업의 핵심소재인 희토류 수입을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해 왔기에 이번 조치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4일 디스프로슘, 이트륨, 사마륨 등 6가지 희토류와 희토류 자석의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국 기업에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해 생산한 제품을 미국 군수업체에 수출하면 제재하겠다’는 경고성 공문까지 발송했다.
최근 한국의 전력설비 제조사 A사는 중국 상무부로부터 ‘중국산 중희토류가 들어간 변압기 등 전력 설비를 미국 방산업체와 미군 등에 수출하지 않겠다는 점을 보증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반도체 기업들에 적용해 온 ‘제3국 수출통제’ 방식을 중국이 희토류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희토류는 스마트폰, 전기차, 풍력터빈, 첨단무기 등 미래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17종의 희소금속을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으며, 가공 및 정제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특히 2023년 기준 전 세계 희토류 부존량 가운데 중국(4400만t), 베트남(2200만t), 브라질(2100만t), 러시아(1200만t) 등 상위 4개국이 전체의 약 84%를 차지하고 있어 자원의 편중이 심각한 상황이다. 자원빈국인 한국은 희토류 수요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이번 조치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희토류 비축 목표 기존 6개월 → 18개월 연장 방안 추진
이에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단기적 충격 완화 대책과 함께 중장기적 차원에서 희토류를 포함한 전략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종합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기차용 영구자석 첨가제로 사용되는 디스프로슘과 합금 첨가제 등에 사용되는 이트륨에 대해 6개월분 이상의 공공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화학 촉매로 사용되는 루테튬은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주로 팔라듐 기반 촉매를 사용해 중국의 수출 통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산업계와 정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단기적으로는 제한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심화되거나 수출 통제가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향후 희토류 비축 목표를 기존 6개월에서 18개월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한국은 베트남과 희토류 광산 개발 협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호주 등 자원 부국과의 협력도 강화할 계획이다. 희토류 사용 저감, 대체, 재활용을 위한 기술개발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형광체용 가돌리늄 같은 희토류는 다른 물질로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고, 영구자석용 테르븀은 디스프로슘 첨가량을 늘려 대응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공급망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희토류 수급 동향 및 영향을 점검했다.
나성화 산업공급망정책관은 “희토류 수급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출통제 품목별로 밀착 관리하겠다”며 “희토류 수입·수요기업에 중국 수출허가 절차 등을 상세히 안내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2023년 희토류 영구자석 등 185개 품목을 공급망 안정 품목으로 지정하고, 특정국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지원을 강화했다. 특히 희토류 영구자석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8대 산업’으로 분류해 ‘공급망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 비축 물량 확대 및 국내 생산 시설 확충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호주 등 희토류 보유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희토류 사용 저감, 대체, 재활용을 위한 기술개발(R&D) 지원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는 생산 시설 확충과 함께 중국 상무부와의 한중 공급망 핫라인, 수출통제 대화체 등을 통해 다각적인 소통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LS에코에너지·포스코인터내셔널·현대차·기아 등 공급망 다변화 노력
한국 기업들도 앞다퉈 공급망 다변화에 노력하고 있다.
LS에코에너지는 베트남 정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주한 베트남 대사관과 함께 현지 광산업체들과의 협의도 진행 중이며, 희토류 사업 추진을 위한 전담팀을 가동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국산 희토류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최대 희토류 기업 에너지퓨얼스와 디뮴-프라세오디뮴(NdPr) 산화물 납품 관련 전략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말에도 미국 리엘리먼트테크놀로지와 중·경질 희토류 수급을 위한 MOU를 맺은 바 있다. 현재는 원료 확보 역량과 가격 경쟁력 등을 검토하는 단계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희토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부터 7개 대학과 함께 3년간 희토류를 대체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는 한국 산업에 위기와 도전을 가져오고 있지만, 이는 한국이 장기적으로 자원안보를 강화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국제 협력 강화, 대체 기술 개발, 전략적 비축량 확대 등 다각적 접근을 통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우리 산업의 생존 전략을 구축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