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성 의구심 vs 에너지 안보·미국 통상 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긴 한데...막대한 투자, 공사 위험성 해결이 관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가스관 개발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발언해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진=인공지능 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가스관 개발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발언해 관련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진=인공지능 이미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참여 여부를 놓고 복잡한 판단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들은 사업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반면, 에너지 안보와 미국과의 통상 관계 개선이라는 전략적 측면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한국은 프로젝트의 경제적 불확실성과 외교적 압력 사이에서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64조원 규모 프로젝트··· 한국과 파트너가 되고 싶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알래스카 북단 프루도베이 가스전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해 남부 니키스키 항구까지 1300km 길이의 가스관을 건설한다. 이를 통해 아시아 시장에 LNG를 수출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오는 2029년부터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과 알래스카 주지사의 방한으로 더욱 탄력을 받은 이 프로젝트는 총 투자비만 약 440억달러(64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알래스카 LNG는 지난 2010년 알래스카 주의회가 가스개발공사(AGDC)를 설립하고, 2013년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 BP 등 메이저 오일업체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사업성 문제로 2016년 모두 철수한 바 있다. 현재는 알래스카 주정부가 소유한 AGDC만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행정명령을 통해 알래스카 개발 사업을 “최우선에 두겠다”며 사업 재개를 선언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일본, 한국 등이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구축에 각각 수조 달러의 투자를 통해 파트너가 되고 싶어 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트럼프 당선인 공식 SNS(X)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트럼프 당선인 공식 SNS(X)

韓, 에너지 산업 도약 기회··· 막대한 투자비 리스크 우려

알래스카산 LNG는 운송 거리의 단축으로 인한 이점이 크다. 알래스카에서 한국까지는 7~9일이 소요되지만, 미국 멕시코만에서는 20일, 중동에서는 34일이 걸린다. 이는 운송 비용 절감과 안정적인 공급 측면에서 유리하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효과가 있다. 중동에 치우친 에너지 공급원을 다양화함으로써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산 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이 충분해 수입 확대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무역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알래스카 LNG 투자는 트럼프 정부가 예고한 관세 부과를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던리비 주지사는 “미국산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관세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국내 기업의 기술력을 발휘할 기회도 제공된다. 한국이 보유한 쇄빙선 건조 기술과 송유관 건설에 필요한 철강 기술은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요소로, 국내 철강·건설 기업들의 참여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반면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 막대한 투자 비용(64조원)에 비해 수익이 불확실하며, 오일 메이저들이 철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혹한의 북극권 환경은 건설 및 운영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 특히 1300km에 이르는 가스관 건설은 기술적 난관이 크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수십조 원에 이르는 투자 비용에 비해 수익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워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른 리스크가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차기 정부에서 바뀔 경우 프로젝트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환경 규제 강화로 인한 사업 진행 차질도 우려된다.

한국 산업과 일자리에 투자할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부담이 있다. 특히 불확실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압력으로 인해 투자를 결정할 경우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우드메킨지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낮은 프로젝트 중 하나”라며 “북극해 인근이라는 지역 특성에 따른 개발의 어려움과 막대한 투자비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세계 원유 수요 증가가 둔화되면서 공급이 충분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알래스카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라며 “환경성 논란과 정권 교체 가능성 등으로 수출이 예정대로 오는 2031년에 시작될지 알 수 없고, 미래에는 국제 가스 가격이 지금보다 떨어질 걸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방한 중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사업성이 낮다는 것은 잘못된 과거 정보에 기반한 분석”이라며 “100만 영국 열량 단위(BTU)당 알래스카 LNG의 원가는 2016년 2.09달러에서 현재 1.15달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파이프라인 수송 및 액화 비용까지 고려한 판매 가격은 100만 BTU당 5.95달러로 멕시코만 LNG 가격과 거의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던리비 주지사는 같은 날 안 장관과 면담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이점이 있다”며 “알래스카에서 한국까지 LNG를 보내는 데 9일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알래스카 LNG 청구서 들고 온 미국, 한국은?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안 장관은 지난 25일 던리비 주지사와의 면담에서 “향후 알래스카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며 “구체적 투자 약속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는 우선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입장 표명 수준의 전략적 모호성을 띤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미측의 입장을 깊이 있게 듣고 이해하는 자리”라면서 “알래스카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 미국과 국내 업계 등과 활발히 소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향후 상호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등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 가치를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을 철저히 검증하고,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과 이에 따른 혜택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정부도 현재 미국과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프로젝트의 경제성과 한국 참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기업은 사업성 분석과 함께 외교·경제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특히 사업의 경제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건과 보장 장치를 협상 과정에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의 참여 여부는 경제적 실익과 외교·안보적 고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전략적 결정이 될 전망”이라며 “이는 단순한 에너지 사업을 넘어 한미 관계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료=HD한국조선해양, 그래픽 =그린포스트코리아
자료=HD한국조선해양, 그래픽 =그린포스트코리아

남극 세종기지·장보고 기지, 극지 송유관 프로젝트 대표적 사례

극지 송유관 프로젝트의 대표적 사례는 남극 세종기지다. 1988년 2월 17일 준공된 우리나라의 첫 번째 남극기지인 세종과학기지는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중공업 등이 공동으로 수행한 프로젝트다. 단순한 기지 건설을 넘어 극한 환경 속 인프라 구축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세종기지 건설 과정에서 현대건설 기술진은 연료 공급을 위한 송유관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설계해 구축했다. 기지 내 연료탱크와 발전시설을 연결하는 송유관은 영하 수십 도의 기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특수 설계됐다.

2014년 완공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도 있다. 세종기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형태의 극지 송유관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담당한 장보고기지는 남극 대륙 내부, 테라노바베이의 브라우닝산에 있어 세종기지보다 더욱 혹독한 환경 조건을 극복했다. 

장보고기지의 송유관 시스템은 순간최대 초속 64.9m에 달하는 강풍과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극한의 저온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건설은 1단계 공사에서 저유시설 및 하역부두 등 주요 시설을 구축하고, 여기에 연결되는 송유관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특히 장보고기지의 송유관이 연간 작업 가능일이 65일이 채 되지 않는 매우 제한된 조건 속에서 완성됐다. 이는 한국 건설업체의 뛰어난 공정 관리 능력과 극지 환경 적응 기술력을 증명하는 사례다. 

북극권에서의 송유관 프로젝트에도 한국 건설업체의 기술력이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의 북극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북극 예니세이 하천지역에 있는 반코르(Vankor) 유전부터 타이미르반도 북극 해안까지 송유관 건설과 세베르 만 근처 딕손 항 주변에 새로운 석유 터미널 건설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한국 건설업체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외에도 2017년 한국가스공사가 가즈프롬과 극한지 파이프라인 공동연구단 구성해 동토지반 지지구조물 설계기술 이전 및 모니터링 장비 공급 계약 체결했다. 

대우건설은 2015년 야말 LNG 터미널 접안시설 공사 수주(2.3억달러). 영하 55℃ 견디는 특수 콘크리트 배합 기술로 러시아 현지 시공능력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획득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2022년 북극용 쇄빙 유조선 3척 납품. 두꺼운 빙판 관통 등을 위한 ASD(Arctic Class) 강재 선체와 360도 추진시스템을 장착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