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개념의 종합투자계좌(Investment Management Account, IMA)가 곧 등장한다. 증권사가 재량껏 운용해 얻은 이익을 고객과 나누는 형태다. 금융소비자에게 안정성·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투자처가 될 전망이다. 증권업계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로 성장할 경쟁이 펼쳐지게 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3곳이 금융당국에 IMA 사업 인가를 신청했다. 한투·미래에셋증권은 지난 7월 일찌감치 신청을 마쳤고, NH증권이 증자까지 단행하며 지난달 막차를 탔다. NH증권은 6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자기자본 요건을 충족했다.
이들 3개 증권사는 모두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다. 지난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이고, 당국이 승인한 증권사는 발행어음, 초대형 투자은행(IB) 등이 가능한 종투사로 인가됐다. 2017년 당국은 더 높은 자본 요건(8조원)을 갖춘 종투사에 IMA 업무를 허용하기로 했으나, 그간 단 한 곳도 나서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원금 지급 의무와 모험 자본 투자 의무에 비해 운용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하고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 때문에 당국은 증권사의 리스크를 줄이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했다. 모험 자본 투자 비율(25% 의무)과 부동산 투자 한도(점진적 축소)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 이번에 3개 종투사가 사업 인가를 신청했다.
IMA가 기존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와 다른 특징은 자산과 부채를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적금, 펀드, 채권은 물론 대출까지 한 계좌에서 통합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단일 계좌에서 자산 운용과 세제 혜택, 유동성 관리까지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예컨대 예·적금으로 안정적 자산을 쌓고, 펀드나 채권 투자로 수익을 추구하면서, 필요하면 대출까지 받는 식이다. 여러 계좌를 따로 관리해야 하는 불편은 줄고, 자산과 부채 현황을 한꺼번에 파악할 수 있는 편리함은 높아진다.
업계에서는 IMA가 본격화하면 증권사의 사업 영역이 은행의 수신 상품과 정면 상대하게 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의 주력 상품인 예금과 유사한 ‘원금 보장’ 안정성을 제공하면서도, 증권사가 운용을 통해 ‘초과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은행에 묶여 있던 거대한 예금 자금이 증권업계로 이동할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IMA는 은행 자금을 증권시장으로 끌어올 메가톤급 상품”이라며 “은행과 증권사 간 고객 확보 경쟁이 본격적으로 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건전성 규제와 리스크 관리가 핵심 변수다. 대출 기능이 포함되면서 부실 우려가 동반될 수 있고, 금융사 간 과도한 경쟁이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자기자본 대비 운용 한도, 신용공여 기준, 세제 혜택 범위 등 세부 규제를 통해 제도의 안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소비자 보호 장치 역시 필수다. 원금 보장 상품과 고위험 투자가 한 계좌 안에서 혼재될 경우 투자자가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충분한 설명 의무와 교육, 모니터링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자본시장에서는 IMA를 두고 예금의 안정성과 증권투자의 수익성을 모두 잡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라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한투·미래·NH 등 대형 증권사가 앞다퉈 도입을 추진하는 만큼, 자본시장 전반의 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한 금투업계 전문가는 “제도가 안착한다는 조건으로 설계 자체만 보면 IMA는 은행만큼 안전하면서 은행 예적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신상품”이라며 “적잖은 은행 예치 자금이 (증권사로) 이동할 수도 있고, 증권사도 은행처럼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역할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연내 IMA와 발행어음 신규 인가 심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는 인가받은 종투사에서 IMA 상품을 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