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출시 예고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배터리 충전하는 엔진 장착 1회 충전 900km 주행

친환경차 선도 브랜드로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전동화 전환의 과도기에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를 전면에 내세웠다.
EREV에는 배터리와 엔진이 동시에 탑재되지만 운행은 배터리가 담당한다. 엔진이 배터리와 교대로 차량을 구동하는 기존의 하이브리드와는 달리, EREV의 엔진은 배터리 충전에만 사용된다. 그래서 한번 충전·주유로 약 900km를 달릴 수 있다.
현대차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충전 인프라 부족, 원가 부담이 겹친 글로벌 위기 상황에 EREV를 ‘징검다리 모델’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완벽한' 배터리가 상용화될 때까지의 공백을 EREV가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 현대차 “친환경차 전환으로 글로벌 복합 위기 돌파… EREV도 한 축 담당”

현대차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고, 파워트레인의 다양화를 기반으로 친환경차 전환 가속화를 통해 글로벌 복합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현대차는 ▲이전에 없던 다양한 하이브리드 ▲현지전략 전기차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후속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신차를 2026년부터 대거 출시하고, 친환경차 라인업 강화해 2030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 555만대 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에서 주목받은 것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 EREV)다. EREV는 내연기관이 탑재된 전기차로, 전기 모터와 배터리로 차량을 주행하다가 배터리 용량이 소진될 경우 내연기관 엔진이 발전기 역할을 해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전력 공급을 추가로 담당하는 방식의 차량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CEO 인베스터 데이를 통해 처음 전략을 공개한 EREV를 자체 고성능 배터리 및 모터 기술력을 바탕으로 2027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대차는 전기차 대비 55% 작은 용량의 배터리를 채택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 EREV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2026~2027년 싼타페, 제네시스 GV70 등 SUV와 고급차종부터 EREV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미국 시장을 비롯해 장거리 주행 수요가 큰 지역이 주요 타깃이다. 현대차는 동시에 북미 충전 규격(NACS) 도입과 아이오나(Ionna) 네트워크 참여로 충전 인프라 확충도 병행한다. 다만 구체적인 차종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EREV는 중소형차보다는 대형 SUV와 픽업트럭에 적합하다"며 "미국 소비자들의 수요를 반영해 약 600마일 주행거리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 과거 ‘미완의 기술’, 다시 불러낸 이유는?
현대차가 EREV를 꺼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차는 2000년대 중반 배터리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으로 EREV 연구·개발을 진행한 바 있으며, 시제품으로 지난 201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EREV 콘셉트 모델 'i-oniq'도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높은 개발비와 미성숙한 배터리 기술, 시장 수요 부족으로 상용화에는 실패했다. 당시 전담 연구 인력까지 꾸렸으나 기술은 서랍 속에 묻혔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달라졌다. 배터리 가격 하락, 배터리 에너지밀도 향상, 그리고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가 맞물리면서 EREV의 실익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과거 EREV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연구진을 다시 모아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가 EREV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EREV가 가진 장점이다. EREV는 하이브리드와 같이 내연기관 엔진을 탑재한 전기차다. 그러나 내연기관 엔진은 오로지 배터리 충전에만 사용된다. 정속 주행(에코드라이브) 외 과속 시에 내연기관 엔진을 활용하는 하이브리드차 보다 친환경적이다.
뿐만 아니라 EREV의 경우 내연기관 엔진으로 충전하며 주행이 가능해 주행거리가 900~1000km에 이른다. 전기차의 경우 최고급 모델의 주행거리가 600km, 일반 모델들의 평균 주행거리가 440~540km대 임을 감안하면 뛰어나다. 즉,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 장거리 이동 문제에 케즘(일시적 수요 저하)를 겪고 있는 전기차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지역에서 EREV는 매력적인 대안”이라며 “현대차가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재도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전동화 과도기의 ‘징검다리’ 역할 수행할 것
전문가들은 EREV를 단기적 해법으로 보고 있다. 전기차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기 전까지 소비자의 불안을 덜어주고, 동시에 친환경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존 하이브리드보다 친환경적이고, 전기차보다는 실용적인 특성을 동시에 갖췄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전기차학과 교수는 "전기차 전환의 지연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EREV는 매우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EREV는 하이브리드 보다 친환경적이며, 충전이 필요 없어 매우 효율적인 차량으로, 전기차의 장거리 주행 기술이 올라오고 충전 인프라가 구축될 때까지 전기차 과도기에 있어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