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삼성전자 등 ‘그린워싱’ 논란
2020년 110건→2024년 2528건 22배 폭증
“EU 규제 강화로 수출기업 직격탄 우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그린워싱(Greenwashing) 실태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환경을 가장한 허위·과장 마케팅으로 적발되는 사례가 4년간 22배 급증하면서 기업 신뢰도 하락과 해외 진출 차질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그린워싱에서 벗어나 진정성 있는 환경경영으로 전환해야 할 마지막 기회“라고 지적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지난 2020년 110건에서 2024년 2528건으로 급증했다. 그린워싱은 친환경(Green)과 세탁(Washing)을 합친 용어로, 실제로는 환경에 해로운 제품을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 사례가 포스코다.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포스코의 ‘그리닛(Greenate)’ 브랜드 제품 3종에 대해 그린워싱 혐의로 정식 안건 상정했다. 특히 ‘이노빌트’ 제품의 경우 친환경 평가 항목이 낮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친환경 제품으로 홍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공정위는 ”심사 기준에서 친환경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다“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도 모순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올해의 녹색상품’에서 4년 연속 최고상을 수상했지만, 2018~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LG전자가 33% 감축한 것과 대조적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초경량 아이시스’로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을 홍보하면서도 멸종위기 동물 이미지를 플라스틱병에 활용하는 자연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GS칼텍스 역시 탄소 감축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국내 에너지 기업 최초 탄소중립 원유 도입'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기업 절반 가까이 “그린워싱 기준 잘 몰라”··· 해외는 벌금 부과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들의 인식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 국내 기업 45%가 그린워싱 기준을 ‘잘 모른다’고 답했으며, 61%는 전담부서나 인력조차 없다고 밝혔다. 이는 그린워싱이 일부 기업의 일탈이 아닌 국내 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현재 국내 그린워싱 규제는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로 이원화돼 있어 기업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기업 57%가 두 규정을 모두 모르고 있으며, 90%가 통합 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처벌 수위도 미약하다. 2019~2024년 그린워싱 적발 사례 중 99.6%가 단순 행정지도에 그쳤고, 실질적 제재는 0.4%에 불과했다.
글로벌 흐름과 비교할 때 국내 기업의 안이함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월마트가 그린워싱으로 300만달러(약 40억9800만원) 벌금을 부과받았다. 호주에서도 태양광 및 가스발전 업체 틀루에너지가 탄소중립 달성 허위 주장으로 5만3280호주달러(약 4700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호주증권투자위원회(ASIC)는 현재 다수의 상장기업과 펀드를 그린워싱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통과된 그린클레임지침은 2026년 9월부터 적용돼 그린워싱 적발 시 연 매출액의 4%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국내 수출기업들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규제가 강화될수록 기업들의 그린워싱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며 ”명시적 거짓 주장 대신 암시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거나, 일부 제품의 친환경 기술을 전체 기업 이미지로 확장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EU 규제 강화에 수출 기업 ‘비상’··· 내년부터 매출 4% 과징금
해외 규제 강화로 국내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지나해 유럽연합(EU)에서 통과된 그린클레임지침은 2026년 9월부터 적용돼 그린워싱 적발 시 연 매출액의 4%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친환경 농산물 구매 경험이 76.8%에 달하는 등 소비자들의 환경 의식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면서 "해당 기업 제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증가하고 있어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 훼손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그린워싱 리스크를 줄이는 최소한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위해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게 되면서 그린워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기존 행정지도 중심에서 시정조치 활용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또한 기업들이 요구하는 상세 가이드라인 제공과 검증 절차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린워싱 문제는 단순한 마케팅 일탈을 넘어 기업 경쟁력의 핵심 이슈가 됐다”며 “진정성 있는 환경경영을 통해 그린워싱 리스크를 기회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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