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은 지난 2021년 제정, 이듬해 시행됐다. 이전의 ‘저탄소 녹색성장법’을 폐지하고 대체하는 법 제정이었다. 이로써 저탄소에서 탄소중립(넷제로)으로 국가적 목표를 전환하고, 녹색기술·산업 육성·촉진으로 경제와 환경의 조화로운 발전을 꾀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런데 탄소중립기본법 제58조에 별도로 제정하도록 규정한 기후금융 촉진에 관한 하위법령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탄소 고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속하고 실현하려면 막대한 자금 투입이 필수적인데, 정부 예산이나 기금이 아닌 정책·민간금융으로 이를 지원·투자할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이에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이 작년 7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의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기후금융 특별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김 의원은 비영리 민간단체인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과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등을 지낸 ‘기후 전문가’다. 그에게 ‘기후금융특별법’ 통과는 선결 과제이자 존재 이유와도 같다.
▷국회의원에게 첫 발의 법안은 흔히 정체성과 같다고 말합니다.
“원래 기후금융 촉진 관련 법안을 1호로 발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관계기관·업계 등 이해관계자들과 의견을 수렴하고 협의할 내용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리더군요. 그래서 ‘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안(해상풍력특별법안)’을 먼저 발의했습니다(김 의원 법안을 포함해 총 7건의 관련 법안을 통합·조정한 ‘해상풍력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 ‘고준위특별법’ 등 ‘에너지 3법’이 인터뷰 전날인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후금융 특별법안’을 발의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탄소 경제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5대 핵심 산업인 철강,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반도체는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이어서 저탄소 전환이 필수적이죠. 이들 산업의 탄소중립 달성 비용은 19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기업이 자체적으로 감당하거나 국가 예산만으로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정책·민간금융이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시점입니다.”
▷기후금융 특별법안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기후금융이란 기존의 녹색금융에 더해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위한 금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제가 발의한 기후금융특별법안은 정부 차원의 ‘기후금융 촉진 기본계획’ 수립·시행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후금융 촉진 지원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특히, 지원 대상을 녹색분류체계상 경제활동에 국한하지 않고, 탄소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 활동까지 포함하도록 확대했습니다. 또, 공공 금융기관이 자금을 우선 지원할 근거 규정을 명시했고, 금융회사가 기후금융 촉진을 위한 전략·목표·이행계획 수립 및 금융상품 개발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어요. 공공과 민간이 기후금융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죠.”
▷어렵게 설명하는 걸 보니 정치인 맞으시네요. 예시를 들어주신다면?
“(웃음) 지금 정부에서 예산이 나가는 건 녹색산업을 지원하는 ‘녹색금융’이라고 봐야 해요. (범위가) 진짜 작아요. 대표적으로 철강은 우리나라 탄소 배출량 1위 산업입니다. 철을 만드는 용광로(고로)에 유연탄을 땝니다. 고로를 전기 고로로 바꿔 화석연료 대신 수소(H2)로 철을 만들면 탄소를 확 줄일 수 있어요. 다만 엄청난 비용이 들죠. 정부가 포스코에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연구개발(R&D) 하라고 수천억 원을 지원했는데, 한참 부족하대요. 철강·석유화학·조선·자동차·반도체 등 국내 5대 주력 산업을 녹색산업이 아니라고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기후금융특별법이 제정되면 정책·민간금융이 이런 것에 투자할 수 있는 거죠.”
▷해외 선진국은 기후금융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이미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은 산업정책과 기후금융을 함께 추진해, 이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지난해 철강을 포함한 몇 개 산업에 정부 지원금 20조엔을 투입(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이행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민간도 정부를 믿고 150조엔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어요. 이런 식으로 각국 정부가 나서서 정책적 마중물을 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당장 시작해도 많이 늦은 셈입니다.”
▷최종 입법되면 산업 측면에서 어떤 기대 효과가 있나요?
“기후금융 활성화는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5대 산업과 여타 산업을 저탄소로 바꾸는 동시에 더욱 성장시킬 핵심 열쇠예요. 기후금융특별법안이 통과되면 기후금융 체계가 명확해집니다. 그러면 기업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 지원 아래에서 기후 친화적인 투자를 더욱 확대할 거라고 봐요 이를 통해 우리 산업이 저탄소 전환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후산업’으로 육성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환경 측면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온실가스 배출 감축 및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전·재생에너지 같은 저탄소 에너지 확대와 함께 탄소 다배출 산업을 저탄소로 전환하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산공정과 관련 설비를 바꿀 수도 있고,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을 적용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입니다. 정부의 예산지원이나 세제감면 등으로는 한계가 있고, 결국 금융이 기업의 저탄소 전환 자금을 지원해야만 합니다. 금융권이 기후금융 지원을 확대하면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산업이 중심인 우리나라 경제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기후금융특별법안에 최초 기본계획 수립 시기를 2028년으로 규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빨리하면 좋겠지만, 상위법과 연계성 등을 고려했어요. 정부가 2023년에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28년에 2차 기본계획을 수립해요(5년 단위 갱신). 기후금융은 탄소중립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2차 기본계획을 반영해 ‘기후금융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두 계획의 수립 주기를 동일한 5년으로 맞추면 계획 간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정책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이해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의견수렴을 했다는데 반응은 어땠나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한국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민간금융사 등과 여러 번 간담회를 가졌어요. 작년 7월 입법토론회에서도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했고요. 금융당국과 정책금융기관들은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금융 체계 구축과 산업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어요.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는 중요한 법적 기반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탄소중립이 세계 공통의 국제규범 같지만, 무역장벽으로도 역할을 합니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약을 체결하고, 자발적으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했어요. 겉으로는 탄소중립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처럼 탄소 감축을 글로벌 통상규제를 위한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는 ‘탄소중립 무역전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무역전쟁에서 한국이 너무 뒤처진 것이죠. (기후금융 없이) 저탄소 전환에 실패하고 탄소중립 무역장벽마저 넘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대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봐요. 기후금융이 '제2의 경제부흥' 기회입니다.”
▷이번 입법 계획을 포함해 향후 의정활동 방향에 관해 말해주세요.
“기후 문제는 특정 이해관계자들만의 이슈가 아니라, 소비자, 기업, 전문가, 정부 관계자 등 사회 전반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예요. 이에 기후금융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입법이 필요한 정책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기후 정책 간담회’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장의 실질적 어려움과 정책적 보완점을 면밀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보다 실효성 있는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