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재무위기 주범,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
한전, 정부의 구제 당연시…부채상환 능력 부재

한전의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는 14조3000억원에 달했고, 연말에는 최대 3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진=권승문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한전의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는 14조3000억원에 달했고, 연말에는 최대 3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진=권승문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한국전력이 사상 최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화석연료에 과도하게 의존한 것이 재무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전이 단기 수익성과 사업성에만 치중한 채 잘못된 투자를 하면서도 부채 증가에 대한 정부의 구제를 당연시하는 등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울러 한전의 녹색채권 규모가 미미하고 ‘그린워싱’ 우려가 있는 만큼 한전의 채권에 대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 한전 재무위기 주범, 과도한 화석연료 의존

한전의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는 14조3000억원에 달했고, 연말에는 최대 30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은 채권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어 회사채 발행액이 연말에는 법정한도인 약 70조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한전의 자본잠식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nstitute for Energy Economics and Financial Analysis, 이하 IEEFA)는 최근 보고서 ‘한전의 청정에너지 전환이 위태롭다(KEPCO’s Clean Energy Transition Hangs in the Balance)’를 발표했다. IEEFA는 한전이 재무위기를 마주하게 된 근원이 한전의 화석연료에 대한 오랜 집착 때문이라 지적했다.

IEEFA는 미국에 소재한 에너지·환경 관련 재정 및 경제 이슈를 분석하는 연구 전문기관으로, 지속 가능하며 수익성이 높은 에너지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를 집필한 IEEFA의 헤이즐 제임스 일랑고(Hazel James Ilango)는 “화력발전이 한전의 발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연료비가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는 구조를 감안했을 때, 변동성이 크고 비싼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노출이 지난 10년 동안 한전의 수익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분석했다. 

한전의 투자자 설명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한전의 발전량 비중에서 석탄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43~52%였고, 원자력(34~38%)과 LNG(8~19%)가 뒤를 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화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60%, 원자력이 36%를 담당했다.

올해 3~5월 석탄과 LNG, 석유 가격은 지난해 4분기보다 64% 급등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전력도매가격(SMP)은 전년 대비 117% 상승해 킬로와트시(kWh)당 169.32원을 기록했다. 반면에 올해 상반기 평균 전기소매가격은 110.4원이었다. 보고서는 현행 발전량 비중을 고려하면 한전은 올해 남은 기간에도 지속적인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림1. 변동성이 큰 석탄 및 LNG 가격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한전의 영업이익률[파란색 막대=한전 영업이익률, 노란 선=석탄 가격, 빨간 선=천연가스 가격](IEEFA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림1. 변동성이 큰 석탄 및 LNG 가격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한전의 영업이익률[파란색 막대=한전 영업이익률, 노란 선=석탄 가격, 빨간 선=천연가스 가격](IEEFA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 한전, 정부의 구제 당연시…부채상환 능력 부재

IEEFA는 한전은 경영진과 이사회의 무능함으로 인해 단기 수익성과 사업성에만 치중한 채 잘못된 투자 결정을 거듭해왔다고 지적했다. 화력발전 의존이 초래한 심각한 경영 위기에 대한 명백한 신호가 있었음에도 영업실적에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쳐온 석탄과 가스발전 의존에서 벗어나 청정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또한 한전이 정부의 구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전은 과도한 부채비율과 영업손실로 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음에도 채권을 계속 발행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채발행 한도를 기존 자본금과 적립금 합산 금액의 2배에서 5배로 상향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부채상환충당비율은 –0.15로 수익이 연간 부채 상환액을 충당하기에 부족한 수준이었다. IEEFA는 “이는 정부의 구제 금융을 과도하게 당연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이는 통상적인 기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전은 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이 총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전의 채권 만기 시점이 2028년까지 분산돼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정점에는 도달하지 않았고 향후 자본적 지출 계획과 저조한 영업 현금흐름을 감안할 때 부채를 추가 차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실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채 상환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 녹색채권 발행액 미미한 수준…요식 행위 불과

한전은 지난 5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석탄과 가스발전소를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전은 매각 대금을 전기요금으로 회수하지 못한 전력 구매대금을 포함해 회사의 채무를 상환하는 용도로 사용해 재무 상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IEEFA는 “문제는 과연 머지않아 좌초될 화력발전 자산을 인수하려는 주체가 있을지, 그리고 그 발전 자산들이 한전의 채무를 상환하는데 기여할 만큼 충분한 가격에 매각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매각 가능성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에 (매각 대상을)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전이 녹색채권을 계속 늘려가고 있음에도 일반 채권에 비하면 그 발행액이 미미한 수준이고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 역시 다른 사업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작다고 지적했다. 향후 발전량 비중의 개선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서 한전의 녹색채권 발행이 요식 행위에 불과했음을 시사하며 이로 인해 한전 녹색채권 투자자는 그린워싱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IEEFA는 “한전의 경영진과 이사회를 포함한 거버넌스의 전면적인 개편을 수반하는 대대적 개혁과 상당한 자금 유입 또는 정부 개입이 담보되지 않는 한, 투자자들은 차환이 예정된 채권을 비롯한 한전의 채권을 인수하는 데 보다 신중한 주의가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제 기후단체인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Toxic Bonds Initiative)’는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 등 총 74곳의 글로벌 금융사와 기관투자자에 “한전의 재정 위기는 화석연료인 석탄과 가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에서 기인한다”며 한전 발행 채권을 매입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최근 전달한 바 있다. 톡식 본드 이니셔티브는 채권 시장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기 위해 결성된 기후단체다. 

이에 대해 한전은 “최근 한전이 발행한 외화채권은 EU 택소노미 기준에 의해 글로벌 ESG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그린본드”라며“그린본드로 조달한 자금은 국내외 신재생 발전사업 지분투자, 신재생 에너지 계통연계 등 친환경 사업에 활용된다”고 해명했다. 

그림2. 한전 전체 자본지출(CAPEX) 대비 미미한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기후솔루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그림2. 한전 전체 자본지출(CAPEX) 대비 미미한 재생에너지 투자 비중(기후솔루션 제공)/그린포스트코리아

 

smkwon@green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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