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세계 최초 12단 HBM4 양산 체제 구축… 기술 리더십 공고화
삼성전자, 1c 공정으로 기술 경쟁 돌입, 평택 투자로 생산량 확보까지
마이크론, 현지 생산 체계로 원가 관리… 각기 다른 전략 빅테크 선택은?

인공지능(AI) 가속기의 필수 메모리인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를 놓고, 글로벌 3강(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HBM4 12단 양산 체제를 구축하며 선제 대응에 나섰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각자의 방식을 통해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AI 반도체의 성능과 전력 효율을 좌우하는 차세대 메모리 시장에서 누가 주도권을 쥘지가 관건이다.
◇ SK하이닉스, 세계 최초 HBM4 양산 체제

SK하이닉스는 초고성능 AI 전용 메모리인 HBM4 개발을 완료하고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갖췄다고 발표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메모리다. AI 가속기에 있어 그래픽 처리장치(GPU)와 결합돼 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HBM은 1세대 HBM, 2세대 HBM2, 3세대 HBM2E, 4세대 HBM3 5세대 HBM3E 순으로 개발돼 왔다. 이번 HBM4는 6세대 제품이다.
SK하이닉스의 HBM4 역시 이전보다 성능과 효율을 크게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데이터 전송 통로를 2배로 늘린 2048개 I/O를 적용해 대역폭을 두 배 확대하고, 전력 효율은 40% 이상 개선했다.
이를 통해 AI 서비스 성능을 최대 69%까지 높이고 데이터센터 전력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또 동작 속도는 초당 10기가비트(Gbps) 이상으로,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기준(8Gbps)을 뛰어넘었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이번 제품에 자사 독자 공정인 ‘어드밴스드 MR-MUF’와 10나노급 5세대(1bnm) D램 기술을 적용해 안정적인 양산성을 확보했다.
조주환 SK하이닉스 부사장(HBM개발 담당)은 “HBM4는 업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시장 요구를 충족하는 제품을 적시에 공급해 경쟁 우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으며, 김주선 SK하이닉스 AI 인프라 사장(CMO)은 “세계 최초로 양산 체제를 갖춘 HBM4는 AI 인프라의 한계를 넘는 전환점”이라며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 삼성전자, “HBM4로 반전”… 1c 공정·평택 투자 확대
HBM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이후에는 삼성전자와 치열한 개발 경쟁을 벌여왔다. 실제 2세대 HBM인 HBM2는 삼성전자가 먼저 양산을 시장하며 경쟁 우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후 4세대 HBM3부터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다시 추월하며 경쟁에 한발 앞선 상황이다.
특히 HBM은 HBM3부터 AI 가속기의 핵심 메모리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SK하이닉스는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에 납품을 독점하면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HBM3E 제품이 엔비디아의 퀠테스트(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시장 점유율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HBM4부터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킨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HBM4에 6세대 10나노급(1c) D램을 채택, 경쟁사보다 미세한 공정을 앞세워 성능 우위를 노린다. 또 로직 다이에 파운드리 4나노 공정을 적용해 더 높은 속도와 전력 효율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역시 이미 주요 고객사에 HBM4 샘플을 출하했으며, 2025년 4분기부터 HBM4 초기 생산에 돌입,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평택 4공장(P4)과 3공장(P3)의 설비를 HBM4 전용으로 전환하고, 5공장(P5) 신설도 진행 중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1c 나노 공정으로 개발한 HBM4 제품을 주요 고객사에 이미 샘플 출하했다"고 밝혔으며 “HBM4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공급해 점유율을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 마이크론, 현지 생산 통한 가격 경쟁까지 도모…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선택은?
후발주자인 마이크론도 HBM4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그동안 HBM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마이크론이 뒤쫓는 구도였다. 그러나 AI 산업 활성화에 따른 HBM 수요 증가와 엔비디아의 공급망 확대 전략에 그 판도는 흔들리고 있다.
실제 마이크론은 지난 4월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납품하며 ‘3등의 반란’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에는 SK하이닉스보다 3개월 늦지만 삼성전자보다 앞서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론 역시 2026년부터 고객사의 차세대 AI 플랫폼 양산 일정에 맞춰 대량 생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마이크론은 미국 내 생산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마이크론은 41조원을 투자해 첨단 메모리 공장과 HBM 패키징 시설을 미국 현지에 건설 중이다. 이를 통해 북미 고객사들의 ‘공급망 다변화’ 요구에 대응하고, 2020년대 후반까지 미국 내에서 전체 D램의 40%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마이크론은 단기적으로는 자체 공정을 활용하되, HBM4e 이후에는 TSMC 파운드리 공정을 도입할 계획이다. 또한 수율 확보와 원가 관리에 집중해 2025년 말까지 시장 점유율을 20% 안팎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AI 가속기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엔비디아는 오는 2026년 AI 칩 '루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루빈에는 HBM4 12단 제품이 탑재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다수의 HBM4 샘플을 요청, 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엔비디아의 퀄테스트는 내년 1분기 말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 HBM4 양산 체제로 기선을 잡았지만,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주도권을 뺏어오기 위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이라며 "결국 엔비디아 등 빅테크가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