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물류학박사)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물류학박사)

최근 글로벌 해운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 컨테이너선 공급 과잉 등으로 해운업계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실제로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9월 5일 기준 1444.44포인트를 기록하며 12주 연속 하락했다. 이대로라면 손익분기점 붕괴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코가 국적선사 HMM 인수를 추진하기 위해 외부 컨설팅에 착수한 것은 단순한 기업 간 M&A를 넘어선 전략적 판단으로 주목된다. 연간 약 3조 원에 달하는 해상 물류비를 지출하고 있는 포스코로서는 원가 절감과 공급망 안정 확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다. 특히 철광석과 유연탄 등 대량 원료의 수입부터 완제품 철강의 수출까지 물류 밸류체인을 수직 통합함으로써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대형 화주 기업의 해운업 진출에 대한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해운협회와 기존 해운사들은 「해운법」 제24조 제7항을 근거로, 시장 교란과 3자 물류 위축을 우려하며 법적 제동을 걸고 있다. 해당 조항은 원유, 제철 원료, 액화가스, 석탄 등 이른바 ‘대량화물’ 운송을 목적으로 화주 또는 지배 법인이 해상화물 운송사업 등록을 신청할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반드시 청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2023년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암모니아 추진선을 도입해 친환경 해운시장에 진출하려 했지만, 해운협회가 암모니아를 ‘대량화물’로 분류하며 법적 제동을 걸었고, 결국 롯데는 사업을 유보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에는 보다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상화물 운송사업은 본질적으로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등록제는 요건 충족 시 행정청이 등록을 수리할 의무가 있는 체제이며, 조건 부여가 필요하다면 애초에 허가제로 규정돼야 한다. 등록제하에서 조건을 붙이려면 반드시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해운법」 제24조 제7항의 “정책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은 이런 근거의 하나로 보이지만, 문제는 그 의견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 자문 성격이라는 점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도 자문위원회의 결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조언’에 불과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결국 해양수산부 장관이 단순히 그 의견을 ‘참작’해 등록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은 등록제의 취지를 퇴색시키고 사실상 허가제와 다르지 않은 자의적 행정 판단을 가능케 한다. 이는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해치는 입법적 미비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유사 사례에서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당 조항을 국회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명확한 등록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해운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해운 환경 역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머스크나 CMA CGM 등은 해운뿐 아니라 항만, 철도, 항공까지 아우르는 종합물류 기업으로 전환하며 단일 해상운송 중심 모델을 벗어나고 있다. 우리 해운업계도 단순 해상운송에 머물지 말고 컨테이너 터미널, 철도, 항공, 창고, 3PL 등과 같은 영역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포스코는 과거 대우로지스틱스와 거양해운 인수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포스코 플로우’를 통해 물류 경쟁력을 키우고 있으며, HMM 인수를 통해 친환경 해운 기술 개발 등 새로운 성장 동력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포스코의 부생가스를 활용한 그린메탄올이나 암모니아 연료는 향후 탄소중립 시대의 선박 연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HMM은 현재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공적 관리 체제에 있지만, 공기업 구조의 한계인 방만 경영과 위기 대응력 부족 문제는 여전하다. 이에 책임 있는 민간 화주인 포스코가 주도하고 일정 수준의 공공 지분을 유지하는 방식이라면 공급망 안정성과 경영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필자가 지난해 HMM 매각 당시 지적했던 독일 하팍로이드(Hapag-Lloyd)의 지배구조 사례와도 유사하다. 공공과 민간 지분의 조화를 통해 투자 촉진, 책임경영, ESG 경영까지 가능한 지속가능한 해운·물류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포스코의 HMM 인수 추진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한국 해운과 철강 산업이 함께 생존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 해운산업 역시 새로운 성장 축을 모색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야 한다. 세계 8위 국적선사 HMM의 미래는 더 이상 해운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안정적 물류체계 구축을 위한 중요한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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