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인명 사고·방산업 탈출 가속·철강업 구조조정
전문가 “한국 제조업 ‘탈출 러시’ 부추기나” 지적
중소기업·자영업자, 최저임금 인상에 ‘생존 비상’

17년 만에 노사합의로 결정된 2026년 최저임금 2.9% 인상이 조선·방산·철강업계를 직격하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17년 만에 노사합의로 결정된 2026년 최저임금 2.9% 인상이 조선·방산·철강업계를 직격하고 있다./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17년 만에 노사합의로 결정된 2026년 최저임금 2.9% 인상이 조선·방산·철강업계를 직격하고 있다. 낮은 인상률에도 불구하고 인력난과 안전사고에 시달리는 이들 업계에는 또 다른 부담이 되면서 한국 제조업 핵심 산업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조선업계, 인력 부족·안전사고 악순환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선업계의 현실은 참담하다. 2024년 조선소 중대재해 사망사고는 18건으로 사망자 22명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증가한 충격적인 수치다. 조선 3사가 안전보건 예산을 1조2844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 늘렸음에도 사망사고는 오히려 급증했다.

배경에는 심각한 인력난이 있다. 지난해 상반기 조선업종 미충원율은 14.7%로 전 산업 평균 8.3%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오는 2027년까지 13만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구직자들을 더욱 조선업계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는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 종사 외국인은 약 1만5000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16%를 차지하며, 2021년 4500명에서 2024년 1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거제지역의 경우 2022년 2691명이던 외국인 인력이 2024년 10월 현재 905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의사소통 문제와 안전관리 어려움은 사고 증가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이후 조선업계 임금이 근로자당 평균 100여만원씩 줄어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숙련공들이 배달업계로 대거 이직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방산업계, MZ세대 기피·구조적 한계

방산업계는 호황 속에서도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MZ세대의 '탈방'(방산업계 탈출) 현상이다. 수직적 관계가 당연시되는 군대식 운영 시스템, 과도한 보안 통제, 워라밸 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다.

24시간 휴대폰과 인터넷 사용 제한, 망분리로 인한 업무 효율성 저하, 격오지 출장과 가족과의 분리 등은 젊은 세대들이 방산업계를 기피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방산업계는 2015년 3만1439명에서 2023년 3만4938명으로 약 3500명 증가에 그쳤다. 매출이 9배 증가하는 동안 인력은 10%만 늘어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방산업계 임금이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산업의 3분의 2도 채 안 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유럽 방산업계에서는 2030년까지 투자 버블의 도래와 그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 방산업계도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설상가상' 철강업계, 구조조정 속 생존 위기

철강업계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산업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현대제철은 올해 3월 전 임원 급여 20% 삭감, 전 직원 대상 희망퇴직 접수 등 전사적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중국 장쑤성 소재 장가항포항불수강제철소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덤핑 공세도 심각하다. 중국 수입 철강 제품 물량은 2020년 601만6634t에서 2023년 879만7355t으로 46% 증가했다. 이는 국내 철강업계의 가격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탈철(철강업계 탈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자발적 퇴직자 수는 2023년 811명에서 2024년 873명으로 7.65% 증가했으며, 비자발적 퇴직자는 1325명에서 1660명으로 25.28% 급증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의 파급 효과는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영세업체에 더욱 치명적이다. 중소기업의 72.6%가 올해 최저임금이 경영에 부담되고 있으며, 66%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동결 또는 인하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영업자의 50%는 현재 최저임금 수준도 경영에 부담이라고 답했으며, 자영업자의 30.4%는 월평균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이 10% 인상되면 노동시장 전체의 근로자 고용규모가 약 1.42~1.74%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2018년 16.4% 인상 시 총고용이 3.5%, 총생산이 1.0% 감소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동화·무인화 속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편의점 4사의 무인 편의점은 2019년 208곳에서 2023년 3816곳으로 18.3배 급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소 낮은 2.9% 인상이지만, 구조적 취약점을 가진 조선·방산·철강업계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가 되고 있다”며 “각 업계가 직면한 인력난, 안전사고, 구조조정 등의 문제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면서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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