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의무화·이사 충실의무 확대… 기업책임 확대···
녹색금융공사 설립· 기후에너지부 신설·석탄발전 폐지 등 "속도전"
재계 “과도한 부담 우려… 유연한 정책 필요”

새 정부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환경정책 변화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특히 강조한 탄소중립과 ESG경영 부문에서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 다시 강조되는 ESG경영, 기업들의 ESG 대응 요구 커진다
이재명 정부는 ESG 정책이 한층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난 5월 26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정당 대선 후보들에게 ‘ESG·기후·재생에너지 정책 질의서’에 대한 응답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질의한 ▲ESG 기본법 제정 찬반 및 추진 계획 ▲지속가능성 공시 조기 의무화 로드맵 제시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필요성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평가 시 기후리스크 반영 및 감독당국 지침 마련 ▲공적금융기관의 자산 포트폴리오 ‘넷제로’ 전환 계획 ▲녹색금융공사 설립 필요성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한 PPA 전용 계획입지 제도 도입 7개 사항에 전부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이 대통령은 ESG 부문 주요 공약으로 ▲ESG 공시 및 평가지표의 법제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의 ESG 투자 기준화 ▲기후·환경 관련 재무정보 공시(TCFD) 의무화 ▲ESG 통합평가지표 마련 및 법적 구속력 부여 ▲공공기관의 ESG 이행 평가 확대 등을 밝힌 바 있다. ESG를 자본시장의 기본원칙으로 삼아 국내 기업의 경영에 지속가능성 요소를 제도적으로 포함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로써 그동안 지지부진해 오던 지속가능성 공시가 의무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2026년까지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하고, 향후 중견‧중소기업으로 확대 적용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와 경제계는 기업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로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2028년으로 유예해줄 것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신정부가 ESG 공시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금융위원회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의무화되면 공시의무 대상 기업들은 비재무지표인 ESG 데이터를 수집‧관리하고, 이를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경영전략 수립과 리스크 관리 체계에도 ESG 요소를 적용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국회는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이번 상법 개정의 키워드는 상법 제382조의 3 ‘이사의 충실의무’의 개정이다. 현재 상법에서는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정부와 여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뿐만 아니라 회사와 주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최대 의결 기구인 이사회가 기업 합병 등에 있어 회사의 이익만을 제고해 결정할 것이 아니라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신정부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와 기업의 책임 강화 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ESG경영 고도화를 통해 기업 경쟁력 제고, 투자 유치 등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녹색금융공사 설립 가시화...시장 공백 메우는 '녹색 마중물' 역할 기대
새정부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한 핵심 금융인프라로 녹색금융공사 설립을 본격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금융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민간금융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위험·시장실패 영역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녹색금융공사는 기존 정책금융기관이나 민간금융회사들이 리스크 부담으로 투자를 꺼리는 분야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핵심 기능이다. 초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나 혁신적 녹색기술 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친환경 제조업 등 녹색산업 투자 확대를 통해 산업구조의 친환경적 전환을 지원한다. 또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취약산업의 공정한 전환 및 구조조정,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특히 녹색채권, 녹색보증 등 금융상품 개발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우수기업 지원, 녹색분류체계(K-Taxonomy) 마련 등을 통해 녹색금융 생태계 조성에 나선다. 국내에서는 지역특화 프로젝트와 저소득층 우선지원, 해외에서는 중장기적 녹색사업 지원도 담당하게 된다.
법안 통과 지연으로 설립 일정 불투명
녹색금융공사 설립 논의는 2020년 7월 '그린뉴딜 금융지원 특별법 제정 전문가 토론회'에서 필요성이 공식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민형배 의원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녹색금융 촉진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올해 6월 현재 해당 특별법은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어서 법안 통과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곧바로 설립 준비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기후공약에서 녹색투자금융공사 설립을 공식화하며, 탄소가치평가 기반 자금조달 시스템 구축, 재생에너지기업 녹색보증 도입, ESG 우수기업 지원 확대 등을 약속한 바 있다.
법안 통과 시에는 설립준비위원회 구성, 조직 및 자본금 조달, 인력 채용, 세부 사업계획 수립 등의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빠르면 법 통과 후 1~2년 내 실질적 출범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국회 논의가 지연될 경우 일정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업계에서는 녹색금융공사가 재생에너지 산업의 자금난 해소, 혁신기술 투자 촉진, 녹색산업의 해외진출 지원 등 다양한 경제·사회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그린뉴딜 정책과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 녹색성장 국가전략 실현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감이 높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 추진 동력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하는 전담기구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2040년까지 석탄발전 전면 폐지 ··· 법적 근거는 미비
정부가 2040년까지 석탄발전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국가 로드맵이나 법적 근거는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국은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2020~2040년)에 따라 발전·산업·건물·수송 등 8개 핵심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은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관계부처가 매년 실적을 점검·공개하며 이행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폐지' 공약은 아직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정부는 기존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제시한 '2034년까지 석탄발전소 절반 폐쇄' 목표를 기반으로, 2026년 1분기까지 석탄발전 전환 로드맵을 수립한다는 방침만 밝힌 상태다.
정부는 향후 수립될 로드맵을 통해 발전사업자와 지역사회가 직면할 고용·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대체 에너지 설비로의 전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전사들은 LNG복합화력, 수소·암모니아 혼소 기술, 에너지저장시스템(ESS), 해상풍력 등 다양한 전환 기술을 병행 추진하며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발전 공기업인 발전5사(남동발전·동서발전·서부발전·남부발전·중부발전)는 현재 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장기 핵심 전략으로 설정해 추진 중이다. 다만 석탄발전에서의 급속한 전환은 막대한 설비 교체 비용과 전력공급 안정성 저해 우려를 수반하고 있어, 발전업계는 전면적 대응보다는 단계적 적응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수명이 남아있는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나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고용 불안, 지역경제 위축 문제는 정부 차원의 중대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에너지 전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후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탈석탄 압박 가속화… 한국은 '에너지 섬' 한계
국제사회는 기후변화협약과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를 통해 각국에 탈석탄 정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9월 마지막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며 벨기에·오스트리아·스웨덴·포르투갈·노르웨이 등과 함께 석탄발전 제로(zero) 달성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국가는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와 인근국과의 전력망 연계를 통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리적 특성상 '에너지 섬' 구조를 벗어나기 어려워 해외 전력망 연계가 제약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 기준 2018년 대비 14% 감축에 그쳐, 정부가 설정한 2030년 감축 목표(40%)와는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는 탈석탄 정책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전환 전략 마련이 시급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기후에너지부 신설, 탄소중립에 강력한 의지 드러낸 신정부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기후 대응과 ESG 경영체계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어갈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그동안 많은 정치인과 정부가 기후 전담 컨트롤 타워를 약속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기후문제를 단순한 환경문제로 다루며, 기후위기 인권, 사회정의 문제 등은 기후 정책의 바깥에 두고 있었다”며 “기후에너지부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실질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은 실제 추진되고 있다. 신정부는 탄소중립‧에너지 전환의 추진을 위해 정부조직을 개편, ‘기후에너지부’라는 독립행정부처를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기후에너지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 업무를 한 곳으로 모아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이행 정책을 포괄적으로 수립‧집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의 추진력을 높이고, 기후‧에너지 정책의 연동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신정부는 기후에너지부 신설과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정책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중립 산업 육성과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 가속화다. 실제 신정부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이행함과 동시에 올해 2035 NDC를 설정해 유엔에 제출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정부는 2031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새롭게 정비하고, 제조업 중심의 현재 국내 산업 체계의 녹색전환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산업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믹스를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원전의 사용은 불가피 하지만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하다”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믹스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신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화력 발전 전면 폐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믹스 전환 ▲산업단지 RE100(사용에너지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 이행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 개편 등을 주요 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신중한 접근으로 과거 정부가 해온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제언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기후·에너지 거버넌스 개편 방향성'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미래산업ㅌ미장은 “2010년대 초반부터 기후와 에너지를 전담하는 정부부처의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제대로 실현된 바가 없었다”며 “기후에너지부가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후와 에너지 정책 간 균형있는 기획과 집행력이 제고되고 이행효과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재계 “취지는 공감… 실질적 이행 위해 유연한 지원책 필요”
산업·경제계는 새 정부의 정책 속도전에 대해 일단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과도한 규제가 기업 운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특히 ESG 공시 대응 체계 구축에 자본·인력 부담이 큰 중견·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일부 대기업의 경우 ESG 이슈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여력이 있지만, 다수 기업은 준비가 미비한 상황”이라며 “새정부의 ESG·탄소중립 정책이 규제가 아닌 혁신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나 유예 조치 등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