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TV 백경서기자의 '특종기사 취재기'..."기자로서 특종은 뿌듯하지만 피해자들 볼때마다 가슴이 먹먹"

[사진= 환경TV DB]

 



피해자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질 않았다. 
5년전 잠시 '반짝'한 뒤 금세 다른 이슈로 우르르 몰려가 버린 언론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이제 기자로서 첫 발을 막 내딛은 새내기 기자에 대한 못미더움...

올해 초 선배기자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취재해 보라는 지시를 받고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서는 그런 표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피해자들은 5년여의 세월 동안 사실상 홀로 힘겹게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터였다. 시민단체 가운데서도 환경보건시민센터만이 벌판에서 이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여론의 관심사에 멀어진 사건...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강물보다 깊게 느껴졌다.

가습기살균제로 가족을 잃거나, 평생 산소통을 달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들에게 나같은 새내기 기자가 비집고 들어갈 심리적 틈은 너무나 비좁았다. 하지만 취재에 들어갈수록 그들의 고통의 그들만의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 모두가 떠안아야 할 고통이라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처음부터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자료를 받기는 어려웠다.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자료를 먼저 조사했다. 며칠동안 살펴본 끝에 가습기살균제의 독성 성분 가운데 단연 핵심은 PHMG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성분으로 밝혀진 4종류 물질(PHMG‧PGH‧CMIT‧MIT)중에서 ‘PHMG’로 제품을 생산했다 .

다시 피해자들에게서 관련 자료를 받기 위해서 매달렸다. 못미더워하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자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고, 끈질긴 요청 끝에 해당 물질에 대한 인체 유해성 정보가 든 보고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보고서는 국내에서 PHMG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던 SK케미칼이 PHMG를 호주에 수출하기 위해 호주 법에 근거해 작성한 자료였다.

입수한 보고서에는 놀랍게도 옥시의 물질에 대해 ”인체 호흡 독성이 충분하다“고 설명돼 있었다. 심지어 흡입 독성 실험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옥시레킷,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사전에 알고 있었다".."과실치사 아닌 살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물길을 완전히 바꾼 첫 특종기사는 지난 2월25일 이렇게 세상에 보도됐다. 

기폭제였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검찰수사는 지극히 '일반적인 수순'으로 진행중이었다. 특정 업체, 특정 독성성분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진게 아니라 제조업체 전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1월말 전담팀을 꾸린 뒤 해당 업체 전체에 대한 압수수색 등 자료를 확보하려 움직이고 있었다.

옥시의 독성성분이 핵심이라는 환경TV의 첫 특종기사가 나가자, 검찰수사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과실치사가 아니라 살인"이라는 보도에 여론은 집중했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처절하게 싸움을 벌여온 피해자들의 외침은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제보도 들어왔다.

첫 기사 보도 이후 피해자들이 그동안 겪은 상황들을 취재하는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3~4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의 얘기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1~2단계 판정자들과 3~4단계 판정자들이 서로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폐 손상만을 가습기살균제의 피해로 인정하는 정부의 등급 판정에 항의하면 '그래도 너희는 3~4단계 판정자잖아' 하는 시각에 눈물짓는 날이 많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에 문의를 할 때도, 심지어 환경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할 때도 이름이나 피해 정도가 아닌 몇 단계 판정자인지 먼저 물었다는 게 그들의 말이다.  

“아직도 기억해요. 내가 딸을 가습기 제일 가까이에 뉘였어요. 방 하나에서 네 가족이 지냈는데 가습기 살균제로부터 딸-엄마-아들-나 순으로 잤어요. 딸은 죽고 엄마는 3등급, 아들과 나는 4등급이에요”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지고, 그제야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사망한 딸의 죽음을 이해했다는 한 아버지를 인터뷰 했다. 그는 사건이 터진 후,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산 대형매장에 달려가 영수증을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만이 돌아왔고 주저앉은 아버지가 안타까웠는지 매장 점주가 ‘여기서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샀다’는 자필 영수증을 써줬다고 했다. 

“가습기 살균제 3-4등급 피해자는 '사망' 했어도 배상 대상 아니다?” 
“애경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도 사망, 피해등급은 3-4등급..병원비도 자부담” 

그렇게 두번째 기사를 보도한 뒤 또 다른 의문이 샘솟았다. 3~4 등급 판정자들이 ‘폐 손상과의 관련성 없음’ 판정을 받고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4등급 피해자들이 내민 통계자료를 살펴봤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로 인정한 질환인 '폐 손상'이 아닌 다른 병을 앓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를 쓰고 코나 기관지, 심장 등 다른 장기의 손상이 온 것이다. 공통점은 이들이 옥시와는 다른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SK케미칼의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이었다. 

SK케미칼은 ‘애경 가습기 메이트’ 제조에 CMIT/MIT라는 독성 물질을 사용했다. 그러나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 조사 당시 CMIT/MIT의 유해성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 독성은 높지만 공기 중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였다. 

자연스레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는 검찰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시민단체와 피해자 모임은 이들 회사의 제품을 쓰고 다양한 질환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질본의 조사 결과는 가해기업에게 일종의 면죄부로 쓰이고 있었다. 

이번에는 SK케미칼과 CMIT/MIT에 대한 취재에 들어갔다. 환경TV의 첫 특종보도가 나간 이후 지난 3월부터 검찰과 언론은 온통 옥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SK케미칼에 CMIT/MIT에 대한 유해성 정보가 적힌 보고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중이어서 제공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물질의 유해성을 어떻게 확인할 지 사방으로 확인한 끝에 미국에서는 농약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관련 보고서를 확보해 확인한 결과, CMIT/MIT가 미국의 한 목재회사에서는 버젓이 농약 제조에 사용되고 있었다. 농약을 만들 정도로 독성이 강한 성분이 우리나라에서는 건강에 좋으라고 쓰는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해 인체에 들어온 셈이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하고 난 후, SK케미칼로부터 답변이 왔다. 해당 물질이 농약에 쓰일 수 있겠지만 화장품에도 쓰이는 ‘방부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증거로 CMIT/MIT가 어디에 쓰이는지 목록을 제공했다. 

목록을 보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CMIT/MIT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면, PHMG도 어디에 쓰는지 알고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취재를 계속한 끝에 3,4탄 기사를 잇따라 보도할 수 있었다.

“에어컨 세정제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되나..물질안전보건자료 단독입수”
“옥시레킷, 에어컨 세정제 화학물질 '공개 못해'..'영업상 비밀' 뭐가 들었기에..” 

에어컨 세정제에 대한 두 기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취재하면서 생활 과학 제품의 안전 전반에 대한 의구심이 만들어낸 기사였다.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했던 옥시와 일본계 회사의 에어컨 세정제의 성분 자료를 입수했다. 해당 자료에는 에어컨 세정제 성분이 ‘호흡기계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옥시의 에어컨 세정제 성분 분석표에는 ‘영업상의 비밀’이라며 60% 정도의 주요 성분을 공개 하지 않고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로 큰 사건을 일으킨 회사가 여전히 소비자의 건강보다 영업상의 이익을 중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진= 환경TV DB]

 



“내 아이를 죽인 게 내가 아니라 제발 옥시라고 말해주세요”

한 아버지의 외침이 옥시의 사과 기자회견장에 퍼졌다. 이곳에서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그렇게 울분을 토했다. 말 없이 기자회견을 적어나가던 기자들도 함께 눈물을 훔쳤다. 

정부 공식 집계로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영‧유아와 임산부를 포함한 221명이 숨졌다. 그리고 530명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취재를 하는 내내 기자로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묻혀가던 무렵 이렇게 피해자들을 벌판에 내버려둘 수은 없다는 일종의 간절함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3~4등급 판정자의 막막함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그래도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어쩌면 이제 시작이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물길을 되돌렸다는 점에서 기자로서 뿌듯함을 감출 수 없지만,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사진= 김덕종씨 페이스북]

 

옥시레킷벤키지 영국 본사에 항의를 방문을 갔다가, 지난 7일 런던의 명물인 '런던아이' 관람차 안에서 사진을 찍은 김덕종씨(40). 그의 아들 승준이는 2009년 가습기살균제의 희생자가 됐고(당시 5세), 아들의 기일이 지난 7일이었다. 

김씨는 '런던아이' 관람차 안에서 승준이의 사진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은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허망하게 떠난 승준이는 7년 만에 런던에서 아빠 손 잡고 런던아이를 탑니다." 

제2,제3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사회적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취재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running@eco-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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