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피해 대상자 포함도 안돼..'등급' 선정 기준 논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운데 비교적 '경증'으로 분류됐던 3-4등급 판정자에서도 등급 지정 전에 여러 명의 사망자가 나온 사실이 환경TV 단독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에따라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성분 원인 조사와 이에 따른 피해자 '등급' 분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있다.

더 큰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1-2등급 피해자만 수사 대상으로 하고 있어 3-4등급으로 분류된 피해자들은 수사 기관 등 국가 기관에 하소연 할 방법도 없고 피해 배상 등에 있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5년 폐를 이식한 가습기 살균제 3등급 피해자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이때문에 수사와 피해 조사 과정에서 소외받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3-4등급 판정자들이 검찰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 정말 처음부터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자신들도 피해 조사를 해줄 것을 촉구하는 민원을 낸 사실이 환경TV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들은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를 통해 “정부가 발표한 등급 중 1-2등급은 ‘폐 섬유화’가 일어나서 피해자 등급을 높게 받은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3-4등급 피해자들 중에도 폐 섬유화 피해자들, 심지어 사망자까지 있다는 것 알고 계십니까?”라며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지난 2008년 원인 모를 간질성 폐질환으로 아버지를 잃은 이정미 씨(40)는 환경TV와의 인터뷰에서 “똑같은 폐 섬유화가 진행됐음에도 이미 돌아가셔서 그런지 CT 등의 모든 자료를 제출했지만 4등급을 받았다”며 등급 산정 기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인터뷰 끝에 이씨는 “내 손으로 아버지의 사무실과 집 책상 앞에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2011년 1월, 폐 섬유화 증세로 남편을 잃은 김태윤 씨(63)도 “처음에 원인을 몰라서 동네병원, 지역병원, 대학병원까지 순차적으로 돌았다”며 “사망 원인이 폐 섬유화로 밝혀졌는데도 왜 3등급인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가습기 살균제로 폐 이식 받은 피해자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는 공식 피해신고를 받으면서  ‘폐 섬유화’의 발병 여부로 1등급(관련성 확실), 2등급(관련성 높음), 3등급(관련성 낮음), 4등급(관련성 거의 없음)으로 등급 판정 기준을 나눴다. 

하지만 3-4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들 가운데 사망자가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정부가 어떤 기준으로 피해자 등급을 산정했는지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구나 '폐 섬유화'를 기준으로 한 등급 산정 자체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장 3-4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은 "'사람을 죽게 만들 정도의 나쁜 성분이었다면 그게 폐 손상만 일으키고 다른 인체 기관이나 장기엔 손상을 일으키지 않았겠냐"며 정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급 기준 산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를 통해 “정말 살균제가 호흡기관을 통해 들어오면서 코와 기관지 점막 등에는 무해했고, 폐에서만 반응을 했을까요?"라며  ‘폐 섬유화’만 집중돼 있는 가습기 살균제 등급 산정의 타당성을 꼬집었다. 

또 "가습기 살균제 성분 4가지(PHMG, PGH, CMIT, MIT) 중에 PHMG, PGH 성분만 인체에 독성이 있었을까요”라며 검찰 수사에서 제외된 2가지 성분의 인체 유해 안전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이 사건은 '폐 섬유화'만 피해자로 보는 단순한 시각으로 끝낼 사건이 아니고, PHMG·PGH성분 이외에도 CMIT·MIT에 관한 추가 조사와 증거 확보를 부탁한다”며 검찰의 수사 확대를 촉구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이에대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급 판정 주무 부서였던 환경부 관계자는 "담배를 피운다고 다 폐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가습기 살균제를 쓴 뒤 질병에 걸렸다고 가습기 살균제를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돌릴 수는 없지 않냐'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급 판단은 우리가 아닌 의사분들이 했다”고 강조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지난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용 가정에서 영·유아와 임산부 등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고,  이후 검찰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특별 전담팀을 꾸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옥시가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는 가운데 수사와 피해 배상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가습기 살균제 3-4등급 피해자들이 집단 행동에 나섬에 따라 검찰 수사 방향과 범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unning@eco-tv.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