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성분 인체 유해성 보고서' 단독 입수..옥시 "답변할 수 없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해당 제품 제조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가 폐 질환을 유발한 치명적 물질인 PHMG의 인체 유해성을 알고도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정황이 환경TV 취재 결과 드러났다.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 PHMG 유해성 평가 보고서 '물질안전보건자료'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 PHMG '물질안전보건자료' 단독 입수

환경TV가 PHMG의 인체 유해성을 분석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단독 입수했다. 

해당 문건은 PHMG를 생산한 SK케미칼이 지난 2003년 3월 작성한 보고서다. PHMG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으로 지목된 4가지 중 하나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현재 SK케미칼이 PHMG를 옥시레킷벤키저에 납품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PHMG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의 약자로 자연에 원래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화학 물질이다. 물에 잘 녹고 항균성이 뛰어나 옥시레킷이 가습기 살균제 주성분으로 사용한 물질이다.

환경TV가 단독 입수한 SK케미칼 유해성 보고서에 따르면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급성 독성-경구(Acute toxicity - oral)' 평가에서 "해당 물질은 경구 계통에 흡수됐을 경우 유해하다(The notified polymer harmful via oral route)" 고 적시돼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해당 물질은 안구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The notified polymer causes severe damage to the eye)" 고 평가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 PHMG 물질안전보건자료

 

 
인체 영향 평가 결과 "위험성 심각"

사람에 대한 유해성 평가에서도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해당 보고서의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평가(Human health - effect assessment)'에 따르면 "해당 물질은  "경구를 거쳤을 경우 유해하다(The notified polymer is harmful by the oral route)" 라며 쥐 실험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해당 물질이 분진 상태에서 흡입 가능한 범위는 20~40 마이크로미터(㎛)로 이 입자 상태에서 흡입됐을 경우 그 위험성은 심각하다"며 "해당 물질은 안구에 특히 심각한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The inhalation hazard of the notified polymer in dust form is significant as the particles are in the inspirable range 20-40㎛ and the polymer is severely irritating to the eyes.)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불거진 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를 분석해 지난 2014년 12월 펴낸 '폐손상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PHMG 입자 크기는 30~50 나노미터(㎚)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1 나노미터(㎚)는 1 마이크로미터(㎛)의 1천분의 1 크기다. 실제 가습기 살균제를 통해 뿜어져 나온 PHMG 입자 크기는 SK케미칼 보고서가 적시한 인체 흡입 분자 크기 20~40 마이크로미터(㎛) 보다 1천 배 가까이 미세한 크기다. 그만큼 인체에 흡입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폐손상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입자의 크기가 100 나노미터(nm) 미만으로 인체에 흡수될 때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보다 폐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말단 세기관지 주위에 침착하여 이를 중심으로 폐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분말 상태로 제조된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쓰이면서 수증기 형태의 극히 미세한 입자로 바뀌어사람의 폐 속에 침투, 심각한 폐 손상과 폐 질환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이에대해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PHMG 성분은 기본적으로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방울, 즉 '에어로졸'에 녹아 있는 형태”라며 “이렇게 에어로졸 상태로 폐로 들어온 PHMG가 심각한 폐 질환을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특히 해당 보고서의 "해당 물질은 안구에 특히 심각한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the polymer is severely irritating to the eyes.)"는 구절의 '안구'에 대해 단순히 '눈'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점막'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사람의 코나 입, 기관지 같은 점막에 흡수됐을 경우 심각한 자극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가습기 살균제 주요 성분 PHMG 물질안전보건자료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 제공하는 자는 건강 유해성 등 정보 제공해야"

관건은  PHMG의 유해성 보고서를 작성한 SK케미칼이 해당 보고서 내용을 옥시레킷에 전달했느냐와 PHMG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옥시레킷측이  PHMG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 여부다.

이와관련 '산업안전보건법'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화학물질 및 화학물질을 함유한 제제를 양도하거나 제공하는 자는 이를 양도받거나 제공받는 자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질안전보건자료에 기재해야 할 내용에 대해선 "대상 화학물질의 명칭, 구성성분의 명칭 및 함유량, 안전·보건상의 취급주의 사항, 건강 유해성 및 물리적 위험성" 등을 적시하고 있다.

또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화학물질은 원소 및 원소간의 화학반응에 의하여 생성된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용노동부 고시 등에 따르면 PHMG는 명백한 화학물질로 이를 제공하려는 SK케미칼은 이를 제공받는 옥시레킷에 해당 물질에 대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넘겼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SK케미칼, 유해성보고서 작성해 옥시레킷에 넘겼을 것..안넘겼으면 불법"
SK 케미칼 "넘겼는지 확인해 줄 수 없다"

이에대해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서 PHMG를 만든 SK케미칼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만들었을 것이고, PHMG를 옥시레킷에 팔았다면 관련 자료를 넘겼을 것이다"며 "법으로 그렇게 지정이 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 환경TV가 입수한 SK케미칼이 작성한 PHMG에 대한 영문 물질안전보건자료도 SK케미칼이 호주에 PHMG를 수출하면서 관련법에 따라 호주 현지 법인에 PHMG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보고서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SK케미칼 관계자는 환경TV가 입수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바탕으로 옥시레킷에 관련 유해성 보고서를 보냈는지 여부를 묻자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답해드릴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SK케미칼은 또 PHMG의 인체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다면 언제부터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의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며 "모든 언론 질문에 답하지 말라는 회사 지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SK케미칼은 그러면서 보고서 자체에 적시된 '유해성' 여부에 대해서도 "맞다, 틀리다로 답할 수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와관련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는 "해당 물질안전보건자료는 흡입 독성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며 "보고서를 만든 SK케미칼이 흡입 독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하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라고 SK케미칼이 PHMG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도 "SK케미칼이 옥시레킷에 PHMG를 판매하면서 PHMG에 대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만들지 않았거나 만들었어도 옥시레킷에 넘기지 않았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옥시레킷, 유해성 사전 인지 여부 "검찰 수사 중이어서 답변할 수 없다"

옥시레킷벤키저는 하지만 관련 사안에 대해 "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졌을 당시부터 "PHMG가 유해물질인줄 몰랐다"고 주장해 온 옥시레킷은 문제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SK케미칼로부터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검찰 조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SK케미칼로부터 해당 성분이 호흡기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이 있거나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이 있는지, SK케미칼에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사용함을 알렸는지 등에 대해서도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지금까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가습기 살균제 관련 시민단체에 신고가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는 영‧유아와 산모를 포함해 모두 226명. 이가운데 150명이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망자다. 전체 신고 피해자의 3분의 2 가량이 옥시레킷 피해자인 셈이다.

수백 명의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라는 문구가 제품에 찍혀 있다.

 



"옥시레킷은 '살인 기업'".."과실치사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 소장은 "옥시레킷은 당시 가습기 살균제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음에도 사태가 터지자 잘못 인정과 사과는 커녕 '나몰라라' 하고 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버티고 있다"며 "이런 행태는 비윤리적인 정도를 넘어 옥시레킷은 '살인 기업'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3일 4차 고발장을 접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도 기자회견을 열고 "내 손으로 사서 넣어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었다"며 관련자들을 출국금지 시키고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옥시레킷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제조,판매해 왔다면 해당 회사와 전현직 임원들을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다.

검찰 "압수수색 통해 유의미한 자료 확보..어느 단계에 책임 물을 수 있을지 조사중"

검찰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내에 이철희 형사2부장을 팀장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조사팀'을 꾸려 전면 재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와관련 검찰은 지난 2~3일 이틀에 걸쳐 살균제 제조업체와 판매업체 9개 회사 핵심 임직원 자택과 연구소 등 26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15일에도 가습기 살균제 관련 3차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SK케미칼도 포함됐다. 

서울중앙지검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성분분석자료를 입수했다”며 “현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 물질로 지목된 4가지(PHMG·PGH·CMIT‧MIT) 독성성분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토대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수사의 초점은 PHMG 등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독성물질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와 이를 알고도 관리를 소홀히 했는지 여부 등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제품의 생산 및 판매 경로는 ‘SK케미칼→유통업체→가습기 살균제 제조납품업체→판매업체’로 이어진다. 검찰 관계자는 "어느 단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조사하고 있다"며 "이번 압수수색으로 유의미한 자료를 확보했다"고 전했다.

'어느 단계'든 업체측이 PHMG의 위험성을 알고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제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했다면 이른바 '미필적 고의, 즉  보호 의무가 있는 자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 해당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143명. 1~2차 피해 신고가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공식 조사결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폐 질환 연관성이 입증돼 사망한 피해자 숫자다. 3차 신고 피해자 조사 결과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옥시레킷 가습기 살균제 사용 피해 사망자는 정부가 1,2차 조사 결과를 통해 '공식' 인정한 숫자만 100명에 이른다. 살인죄가 적용된다면 '집단 살인'이다.


running@eco-tv.co.kr

저작권자 © 그린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