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수씨(45)는 지난 2010년 12월 태어난 지 1년도 채 안 된 딸 혜수를 잃었다. 임신 6개월 만에 조산으로 태어나 세상빛을 보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보내져 8개월 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건강해진 딸이었다. 

딸을 안고 부푼 가슴에 집으로 돌아갔던  영수 씨의 단란한 행복은 한달도 안 돼 산산히 깨졌다. 8개월 간의 집중관리 끝에 건강해져 멀쩡하게 퇴원했던 딸이 퇴원 3주도 안 돼 갑자기 호흡 곤란을 보이더니 병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숨졌기 때문이다.

사인은 '급속 호흡 곤란 증후군'. 영수씨는 그때는 몰랐다. 건강해져 퇴원한 딸이 왜 그처럼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를. 

영수 씨의 딸 혜수 [사진= 유가족 제공]

 



당시 혜수의 담당 의사는 거의 5년 반이 지났음에도 혜수를 똑똑히 기억했다. 혜수가 인큐베이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퇴원할 때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로 병원 직원 모두가 기뻐했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퇴원한 혜수가 2주 정도 지나 갑자기 증상이 나빠져서 왔다”며 “호흡기 관련해 모든 치료를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상태가 너무 빨리 악화돼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퇴원한 뒤 매일 애경 '가습기 메이트' 하루 종일 틀어줘

영수씨는 혜수를 데리고 집에 온 뒤 하루도 빠짐 없이 가습기를 틀어줬다고 한다.   

혜수를 데리고 집에 온 날은 2010년 12월 2일. 영수 씨는 “딸 혜수가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봐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어 매일 24시간 틀어줬다”며 “혹시라도 창문을 통해 찬 바람이 들어 올까봐 틈이란 틈은 다 막아놨다”며 가슴을 쳤다.

영수 씨가 쓴 제품은 애경 ‘가습기 메이트’였다. 지난 2001년 애경이 출시한 '가습기 메이트'는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 살균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인기' 제품이었다. 주 성분은 CMIT/MIT다. 

CMIT/MIT, 가습기 살균제 성분 가운데 '세포독성' 가장 높아

지난 2011년 영·유아 및 임산부가 잇따라 사망하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후, 질병관리본부에서는 ‘폐 손상 조사위원회’를 꾸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성분 4가지 PHMG·PGH·CMIT/MIT에 대한 세포 독성 실험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노출 재연시험도 함께 진행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다.

이후 지난 2014년 12월 폐 손상 조사위원회는 ‘가습기 살균제 건강피해 백서’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그리고 4가지 성분 중 PHMG와 PGH를 폐 섬유화의 원인 물질로 적시했다. 

다만 CMIT/MIT는 세포독성이 가장 높은 성분으로 드러났음에도 실제 가습기에서 내뿜는 살균제의 농도를 측정한 ‘노출량 재연 평가’에서 노출 농도와 가능성이 낮다고 나와 분명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

이와관련 현재 검찰의 가습기 살균 수사팀 자문위원회에 속해 있는 성균관대 약학대학 김용화 초빙 교수는 “보고서를 펴낼 때 동물 실험 결과로 확실히 폐 섬유화라고 나온 PHMG와 PGH에만 정부가 주의를 집중하다보니 그런 잠정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CMIT/MIT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아 폐 손상 등과 관련한 인과관계 도출이 막혀있는 것 뿐”이라며 “CMIT/MIT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말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불거진 초기 사망자들이 모두 '폐 섬유화'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초점이 폐 섬유화에 집중돼 다른 호흡기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주로 폐 섬유화 증상이 나타난 옥시 등 PHMG와 PGH가 주성분으로 들어간 제품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피해 1·2 등급을 받은 반면  CMIT/MIT가 원료인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쓴 사람들은 3·4등급 판정을 받았다. 

"'폐 섬유화' 질환에 집중, 다른 호흡기 질환 인과관계 규명은 상대적으로 소홀"

‘폐 섬유화’로 증상이 집중되는 PGH나 PHMG 성분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CMIT/MIT 성분의 가습시 살균제는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 조사 등급 판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 관련 제품을 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환경TV와 만난 애경 가습기 메이트를 썼다는 피해자들은 작게는 비염부터 크게는 간질성 폐질환, 심장질환, 내분비, 순환기, 내장질환까지 다양한 질환을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이와 관련 이런 등급 판정이 내려진 것은 가습기 메이트의 성분인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아서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에서 펴낸 보고서가 오히려 CMIT/MIT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업체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 12월 정부가 발간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건 백서에 따르면 CMIT/MIT에 대해서는 "이번 노출평가 결과를 가지고는 분명한 결론을 내리기가 힘든 상황이다"며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더 정밀한 분석방법을 개발해서 실제 노출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와 관련해 현재 환경부가 공기 중 CMIT와 MIT의 정밀분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추가 조사가 필요하고 진행돼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백서 "더 정밀한 분석방법 개발해 실제 노출농도 측정해야"
환경부 "더 조사해야 할 유의미한 결론 얻지 못했다" 

그러나 환경TV의 취재결과 환경부는 추가 조사와 관련해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CMIT와 MIT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는데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환경부 주무부서 관계자는 “우리도 CMIT/MIT성분이 든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을 조사했지만 더 조사해야할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며 "추가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백서엔 "더 정밀한 분석방법을 개발해서 실제 노출농도를 측정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고 적시돼 있는데, “보고서에 이미 CMIT와 MIT에 대해 상관관계가 부족하다고 나와있지 않느냐”는 것이 이 관계자의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애경 가습기 메이트 사용한 사람들 중 3·4 등급을 판정 받은 사람들이 ‘폐 섬유화’말고도 질환별로 보완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3등급 피해자들을 1년에 한 번씩 서울 아산병원으로 불러 질환별 검사를 실시한다”고 말했다.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지 검사했지만 역시 추가적으로 실험을 실시할 정도의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애경 제품을 쓰다 3-4등급을 받은 피해자들은 "환경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돌도 못지내고 숨진 혜수와 함께 가습기 메이트를 쓴 어머니는 3등급 판정을 받았다. 영수씨의 가족은 당시 단칸방에서 함께 지냈다. 가습기 살균제 가장 가까이에 혜수를 누이고 부인, 영수씨, 아들 순으로 잠을 자곤 했다는 게 영수씨의 설명이다. 

영수씨는 “와이프가 겨울만 되면 왼쪽으로 돌아눕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아프다고 한다”며 “저번에 아산병원 모니터링을 가게 되서 심장이 아픈데 혹시 심장 쪽 검사를 하면 안될까 요청했더니 ‘폐’쪽만 가능하다며 딱 잘라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애경 가습기 메이트 제품 [사진=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3-4등급 피해자 병원비 지원도 안돼.."우리도 피해자인데..."

3·4등급 피해자들 입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하나 현실적인 문제는 손해배상과 피해보상이 1·2등급에만 집중되다 보니 병원비 부담이 없는 1·2등급 피해자와 달리 3·4등급 피해자들은 병원비조차 모두 개인 부담으로 내고 있다는 점이다.

증상이 악화되는 등 추가 진료나 치료가 필요할 경우 병원비가 걸림돌이 돼 자칫 제 때,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지 못해 질환을 더 키울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때문에 3·4등급 피해자들은 최근 검찰에  3·4등급 피해자들도 피해대상에 포함시켜 철저히 조사해 줄 것을 촉구하는 민원을 넣었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폐 질환 이외 다른 장기 손상으로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두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30명. 이가운데 305명이 3·4등급 피해자로 1·2등급 피해자보다 80명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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