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국내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 송철호 기자
  • 승인 2019.07.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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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불산 유출 사고’가 초래한 파장...효과 없는 환경규제만 남발
국내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이 경쟁력을 잃게 된 데에는 2012년 9월 27일에 발생한 경상북도 구미 4공단의 ㈜휴브글로벌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크게 한몫 했다. (사진 Pixabay 제공)
국내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이 경쟁력을 잃게 된 데에는 2012년 9월 27일에 발생한 경상북도 구미 4공단의 ㈜휴브글로벌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크게 한몫 했다. (사진 Pixabay 제공)

[그린포스트코리아 송철호 기자] 일본의 보복성 한국 수출 규제에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시선을 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일본산을 대체하기 위해 중국, 대만 업체와 접촉해 불화수소 품질 검증에 들어갔으며 SK하이닉스 등 국내 다른 반도체 업체들도 일본을 대체할 공급처를 중국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는 반도체 기판 표면 처리(불순물을 제거하고 세척)에 쓰이는 물질이다.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 의존도가 유독 높은 상황이다.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한 한국의 대일본 의존도는 41.9%에 달한다.

국내 산업구조에 따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경우가 있지만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한 의존도는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특히 일본의 보복성 한국 수출 규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국내기업이 아닌 중국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일단 국내에서 생산하는 고순도 불화수소의 양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반도체기업들이 순도가 높은 일본산을 사용하다보니 국내 소재업체들이 그동안 생산시설을 증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국내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이 경쟁력을 잃게 된 데에는 지난 2012년 9월 27일 발생한 경상북도 구미 4공단의 ㈜휴브글로벌 '불산 가스 누출사고'가 크게 한 몫을 했다.

이 사고의 원인이 된 불산의 정확한 명칭이 바로 ‘불화수소산(플루오르산)’이다. 일명 불산으로 불리는 이 맹독성 물질은 불화수소산을 줄인 말로, 사건 당시 발생한 흰색 기체는 플루오르산 속에 약 50% 정도의 농도로 녹아있던 플루오르화수소가 공기 중으로 나와 수분과 반응한 것이다.

당시 이 사고로 사건 현장에 있었던 휴브글로벌 직원 4명과 펌프 수리업체 직원 1명이 사망했으며 인근 주민들은 피부발진, 호흡곤란 등을 호소했다. 심지어 진화에 나섰던 소방관들의 피해도 속출했으며 사고 후 농작물 피해가 심화되기도 했다.

당시 불산 유출 사고의 직접 원인은 작업 근로자의 실수였지만 근본적으로 회사 경영진의 안일한 사고방식과 관리·감독 당국의 허술한 관리, 지역 지자체의 재난 사고 초동 대처 미흡 등이 문제를 키웠다고 봐야 한다. (사진 민주노총 제공)
당시 불산 유출 사고의 직접 원인은 작업 근로자의 실수였지만 근본적으로 회사 경영진의 안일한 사고방식과 관리·감독 당국의 허술한 관리, 지역 지자체의 재난 사고 초동 대처 미흡 등이 문제를 키웠다. (사진 민주노총 제공)

이 대형 참사는 사고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까웠지만 이 사고의 발생이 이미 예고돼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국민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참사 발생 3년 전인 2009년 6월에 휴브글로벌의 한 직원이 불산을 탱크로리 차량에 옮겨 싣기 위해 고압 호스를 연결하다 접속 부위가 펌프 압력 때문에 순간 분출되면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작업을 하던 직원이 손과 가슴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당시 사고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휴브글로벌은 근로자 정기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5명 이하(실제 근무 직원이 7명)에 대해서는 안전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 허위 신고를 해 노동부 공정안전보고서의 불산 취급 사업장 목록에서도 빠졌다. 결국 초기에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해결했다면 2012년 9월에 5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당시 불산 유출 사고의 직접 원인은 작업 근로자의 실수였지만 근본적으로 회사 경영진의 안일한 사고방식과 관리·감독 당국의 허술한 관리, 지역 지자체의 재난 사고 초동 대처 미흡 등이 문제를 키운 게 사실이다. 그리고 정치계와 언론이 이 사고에 대한 공포심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 공포심은 생각보다 더 극대화됐다. 사고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강도 높은 뒷북 규제와 싸늘한 국민 여론은 국내 고순도 불화수소시장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분명 악영향을 줬고, 그것이 결국 지금까지도 주변국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2012년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규제가 강화돼 취급시설 기준이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5배 이상 늘었다. 이로 인해 국내 소재 가공업체가 불화수소의 자체 생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던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환경규제로 정말 안전하고 깨끗한 산업환경이 조성됐다면 감내해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꾸준히 유해화학물질은 유출되고 있고, 여전히 정부와 지자체는 유사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허둥지둥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보복성 한국 수출 규제로 새삼 깨닫게 되는 양만 많은 환경규제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3보 전진하기 위해 2보 후퇴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song@green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