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에서 전략으로... 공공기관 사회공헌 트렌드의 변화
ESG와 사회적 가치가 이끄는 지역·나눔·안전의 3대 키워드
지역사회 ‘전략적 파트너’로 재정의되는 공공기관의 역할

공공기관들이 추석을 맞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공공기관들이 추석을 맞아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공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단행하고 있다. 일회성 기부와 형식적 봉사의 낡은 관행에서 탈피해, 경영 전략의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다.

변화의 동력은 두 갈래다.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제도적 압력이 가해졌고,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올해 추석 연휴는 이러한 전환점을 확인하는 시험대가 됐다. 공기업들은 저마다의 조직 특성과 지역적 기반을 활용해 △골목상권 살리기를 통한 '지역상생' △임직원 참여형 '나눔과 봉사' △국민 안전을 위한 '비상대응체계' 등 세 축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활동을 전개했다.

훈훈한 온기, 골목상권으로…‘지역상생’에 집중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농어촌공사, 서부발전, 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전KDN이 추석 맞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 각 공공기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농어촌공사, 서부발전, 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전KDN이 추석 맞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 각 공공기관

과거 사회공헌이 소외계층에 대한 일방적 시혜에 그쳤다면, 이제는 지역 경제 생태계 전체를 살리는 '상생 모델'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공공기관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경제 선순환에 직접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 전환의 결과다.

대표적으로 서부발전은 태안군 오일장에서 소비 금액의 50%를 온누리상품권으로 돌려주는 파격적인 ‘페이백’ 행사를 열었다. 이는 소비 촉진을 직접 유도해 지역 상권에 ‘돈이 돌게’ 만드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 모델이다. 

전통시장에서 직접 물품을 구매해 이를 다시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상생형 나눔’은 올해의 가장 뚜렷한 트렌드다.

한전KDN은 임직원 20여 명이 나주목사고을시장에서 장을 봐서 마련한 물품을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 전달했다. 박상형 사장이 직접 시설을 찾아 임직원들의 마음이 담긴 메시지 카드를 전한 것은, 활동의 진정성을 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에너지공단 역시 노사가 함께 울산 태화시장에서 명절 음식을 구매해 ‘희망꾸러미’ 280개를 만들어 취약계층에 전달, 노사 상생과 지역 상생의 가치를 동시에 실천했다.

이 외에도 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먹거리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후원금을 지역화폐로 전달했으며, 농어촌공사는 450만 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나주 지역 복지시설 3곳에 지원하며 지역 내 소비를 유도했다.

소외된 이웃 향한 따뜻한 손길…체계화된 ‘나눔과 봉사’

임직원들의 직접적인 나눔과 봉사활동 역시 단순 참여를 넘어, 전사적 캠페인으로 조직화되며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는 활동의 효과성을 높이고 참여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전략적 변화다.

한국전력과 중부발전이 대표적이다. 한전은 4주간의 ‘추석 명절 집중 봉사활동 기간’을, 중부발전은 2주간의 ‘행복나눔주간’을 운영했다. 특정 기간을 설정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산발적인 활동을 하나로 묶어내고 사회적 파급력을 키웠다.

특히, 한전은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러브펀드’를 재원으로 전국 304개 사업소가 동시에 활동을 펼쳤고, 중부발전은 본사와 각 발전본부가 지역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봉사를 릴레이로 이어갔다. 이영조 중부발전 사장이 “지역 주민들과 행복동행하기 위해 마련한 활동”이라고 밝힌 것처럼, 이제 봉사활동은 지역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핵심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중부발전, 가스공사, 해양환경공단, 에너지공단이 추석 맞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 각 공공기관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중부발전, 가스공사, 해양환경공단, 에너지공단이 추석 맞이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각 공공기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난 헌신…공공기관 본연의 ‘비상대응체계’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본질적인 사회공헌은 공공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여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지키는 것이다. 특히 긴 연휴 기간, 이들의 ‘비상대응체계’ 가동은 그 자체로 가장 큰 사회적 가치 실현 활동이다.

연휴로 인한 ‘폐기물 대란’을 막기 위해 환경 관련 기관들이 나섰다. 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는 EPR 대상품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전산 시스템 장애에 대응하는 ‘비상대응반’을 가동했다. 한국환경공단 역시 지역환경본부 네트워크를 활용한 총괄관리 체계를 운영, 폐기물 수거·처리 현황을 종합 점검하고 적체 우려 지역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망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가스공사는 지난 1일부터 열흘간을 ‘전사 안전관리 강화 기간’으로 정하고, 안전기술부사장 중심의 컨트롤타워를 가동해 LNG 생산·공급시설에 대한 특별 점검과 24시간 상시 감시 체계를 강화했다.

국민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도로공사는 ‘특별교통대책기간’을 지정하고, 졸음운전 등 명절 기간 교통사고의 65.3%를 차지하는 사고 유형에 대한 집중적인 안전 캠페인을 전개했다. 해양환경공단은 울산지사에서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 추락·끼임 등 5대 중대재해 예방 항목을 집중적으로 살피며 산업 현장의 안전을 지켰다.

지속가능한 동행을 위한 새로운 역할 정립

2025년 추석 공기업들의 사회공헌은 ‘얼마나’가 아닌 ‘어떻게’에 집중하며 질적인 전환을 이루어냈다. 이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ESG 경영이라는 글로벌 표준에 부응하기 위한 필연적인 진화이며, 우리 사회와의 지속가능한 동행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기업의 역할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를 넘어서,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재정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역사회 발전의 실질적 주체로서 신뢰를 구축하고, 공공기관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장기적인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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