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사망 사고 발생 시 영업정지·등록말소 등 제재 대폭 강화
건설업계 "처벌만 강화하는 것 아닌 근본적 제도 개선 병행해야"

정부가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
정부가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건설업계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그린포스트코리아 그래픽

정부가 중대재해 근절을 위해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이 건설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수립된 이번 대책은 단순한 처벌을 넘어 구조적 사고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범부처 협업 과제를 담아 기존보다 한층 강화된 안전관리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과징금, 영업정지, 등록 말소까지 이어지는 고강도 제재가 포함되면서 업계는 사실상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단기적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전관리 역량을 갖춘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 등록 말소·과징금 신설…안전 관리 역량 강화

15일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반복 발생한 건설사는 고용노동부 요청에 따라 등록이 말소돼 신규 사업과 수주가 전면 중단될 수 있다. 또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면 영업이익의 최대 5%, 최소 3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영업이익이 1조원대에 이르는 상위 건설사의 경우 수백억원대 부담이 불가피하다.

영업정지 요건 역시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으로 확대됐고, 정지 기간도 늘어난다. 3년간 영업정지 2회를 받은 뒤 다시 사고가 발생하면 등록 말소까지 가능하다. 여기에 중대재해 발생 사업주에 대한 외국인 고용 제한, 노동자의 작업 중지·시정조치 요구권 등도 신설됐다.

중대재해 예방과 관련 대기업·원청사에는 더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된다. 발주자는 적정 공사비 산정 의무를 지게 됐고, 공사비의 2~3% 수준인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주체도 원청으로 확대됐다. 사실상 원청이 하청 안전비용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공사기간 산정 기준이 민간공사에도 의무화되고, 폭염 등 기상재해가 공기 연장 사유로 추가됐다.

업계는 이 같은 조치가 단기 수익 구조를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단기간에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사비·공기 책정 단계에서부터 안전비용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법 하도급 단속도 정례화되고 '안전 역량 있는 수급업체 선정'이 법적 의무가 되면서 단가 후려치기 관행도 사실상 차단된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건설산업기본법 등 12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당정 협의 후 연내 입법화할 계획이다. 정책 수행을 위해 정부 부처 전체를 통틀어 2조722억원도 투입할 계획이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업에 더 이득이 되는 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고강도 제재 수단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 처벌만 강화해선 효과 없어…사회적 합의 필요

이번 제재 조항은 대부분 산재 사망사고 비중이 높은 건설업을 정조준했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까지 사망한 근로자 287명 중 건설업 비중은 138명(130건)으로 전체 사고 사망자의 48%를 차지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대책을 두고 파장을 예측한다. 건설업의 안전문제는 건설사들의 안전불감증보단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되지만 규제는 건설사들의 비용 증가와 사업 리스크 증가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영업이익의 5% 과징금은 매출원가율을 약 0.3%포인트 높이는 효과"라며 "건설 경영에 실질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건설업 등록 말소라는 강력한 제재가 고용노동부 요청으로 가능해지면서 건설업의 계속 사업 영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됐다"며 "사업장 관리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적극적인 수주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처벌만 강화해선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제재와 징벌 위주의 대응은 결국 사업만 위축시킬 것이란 의미다. 공사비와 공기 등 사고의 원인이 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처벌만이 아닌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간 구조적 관행인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사망사고가 반복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속도보다 생명을 우선하고,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비용·시간을 더 들여도 괜찮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동주 한국주택협회 상무는 "안전관리 비용과 공기를 보장해주면 사고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며 "페널티 중심의 규제는 공사비를 올리고 결과적으로 사업성 악화와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모든 회사가 안전 관리 수준을 강화했지만 사망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며 "여기엔 관행처럼 굳어진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재만 강화해선 건설업 경기가 더욱 살아나기 어렵다"며 "현장 의견을 수렴해 근본적인 문제도 개선돼야 대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특성상 각 공정마다 협력업체에 일감을 넘기는 하청에 불법 재하청이 끼면서 사고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헐값에 하청을 주다가 사고가 나는 식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불법 재하청까지 책임을 원청이 모두 지기 어렵다"며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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