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모빌리티 흡수해 경영구도 재편··· 940억 리스크 돌파할까
이웅열 명예회장, ‘비상장 카드’로 승계자금 마련 나서
이규호 부회장, 주식 보유하지 않아도 경영승계 가능

코오롱그룹 지주사가 자회사 코오롱모빌리티그룹과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완전자회사로 편입시키고 비상장으로 전환한다고 결정했다. 표면적으로는 사업구조 재편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에서 장남 이규호 부회장으로의 4세 경영승계를 위한 치밀한 ‘마스터플랜’이 숨어 있다.
2018년 이 명예회장이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파격 선언한 지 7년. 13년간 그룹 전 계열사를 순환하며 경영수업을 받은 이규호 부회장이 마침내 승계의 마지막 관문에 서게 됐다. 하지만 9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주식담보대출에 발목 잡힌 명예회장의 재무구조가 승계 과정에서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71년 장자승계 DNA, ‘능력주의’ 포장한 승계 시나리오
코오롱은 지난 7일 이사회에서 자회사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완전자회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식교환 비율은 보통주 1:0.0611643, 우선주 1:0.1808249이며, 코오롱의 신주 발행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비상장사로 전환되며,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과 적극적인 사업 전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1984년생인 이 부회장은 아버지의 철학에 따라 2012년 입사 후 13년간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현장에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일반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현장밀착형’ 리더십을 보여왔다.
구미공장 차장(2012-2013)부터 시작해 건설현장 관리(2014), 전략기획(2015~2017), 신사업 개발(2018), 자동차부문(2020), 최고전략책임자(2021)를 거쳐 현재 지주사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2023)에 이르기까지 그룹의 핵심 사업영역을 모두 순환하며 경험을 쌓았다.
특히 2015년 코오롱이노베이스 설립을 주도한 벤처투자, 2018년 공유주거 ‘리베토’ 운영, 수소사업 밸류체인 구축 등은 모두 그의 주도로 이뤄진 성과들이다. 이는 단순한 ‘금수저 승계’가 아닌 실력으로 검증받은 승계임을 강조하려는 코오롱가의 전략으로 해석된다.
940억 빚더미·연 49억 이자 부담··· 승계자금 마련 급선무
이 명예회장의 복잡한 재무구조가 승계 과정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코오롱 지분 51.64% 중 38.40%를 담보로 650억원을 대출받았고, 코오롱인더스트리 지분으로도 290억원을 추가 차입해 총 940억원의 주식담보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부회장이 현재 지주사 코오롱 지분을 1주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벌 승계 과정에서는 후계자가 최소한의 지분을 미리 보유한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지분을 늘려가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코오롱의 경우 ‘능력 검증 후 승계’라는 원칙 하에 후계자에게 지분을 전혀 이전하지 않은 채 승계 시점을 맞게 됐다.
구조적인 자금부족도 걸림돌이다. 연간 이자비용만 49억원에 달하는 반면, 명예회장의 연간 배당수입은 세후 기준 약 18억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이 부회장이 현재 코오롱 지분을 1주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승계를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코오롱 시가총액이 2조원을 넘어서면서 지분 증여 시 증여세 부담도 크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승계자금 마련은 코오롱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완전자회사 편입과 비상장 전환은 향후 비핵심자산 매각을 통한 승계자금 확보의 첫 단계로 해석된다. 37년 역사의 국내 1위 수입차 딜러사인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BMW, 아우디, 볼보, 로터스, 지프 등 프리미엄 브랜드 5개를 취급하며 전국 97개 지점을 보유한 수익성 높은 자산이다.
올해 2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 5903억원(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 영업이익 91억원(9.2% 증가)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중고차 사업의 성장이 돋보인다. 2분기 인증 중고차 판매량은 1427대로 전년 동기 대비 32% 급증했다.

비상장 카드로 경영 자유도 확보··· 2~3년 내 승계 완성 시나리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비상장 전환은 단순한 구조조정을 넘어 여러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공시부담 해소로 경영진의 의사결정 속도가 대폭 향상된다. 모빌리티 산업처럼 전동화, 자율주행, 공유경제 등 급변하는 분야에서는 신속한 대응이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이나 신사업 진출 시 전략적 유연성이 크게 높아진다. 상장회사 의무에서 벗어나 시장 상황에 따른 신속한 사업구조 재편이 가능해진다.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이미 2023년 로터스, 지프, 스웨덴 전기오토바이 브랜드 케이크(Cake) 등 신규 딜러십을 확대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비핵심자산 매각을 통한 승계자금 확보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비상장 전환으로 공개매수나 자산매각 시 공시부담이 크게 줄어들어 전략적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완전자회사 편입을 시작으로, 향후 2-3년 내 추가적인 자산매각과 사업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의 서초 스포렉스 매각(4,301억원), 코오롱생명과학의 mPPO 사업 매각(340억원) 등이 이미 진행된 상황에서 추가 자산 매각을 통해 승계자금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영업이익이 2022년 2425억원에서 2024년 1587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주력 화학섬유 사업의 성장 한계가 뚜렷하다. 중국 저가 공세와 고유가 부담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사업모델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오롱그룹의 이번 결정은 71년 역사의 장자승계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라며 “13년간의 경영수업과 실적 검증 과정을 거친 이 부회장이 마침내 승계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그룹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면서 “코오롱가 4세 승계의 마지막 퍼즐이 어떻게 완성될지 이목이 집중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