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기요금 급등에 '전력 직구' 통한 변화 급물살
전력 시장 선진화 신호탄 … 한전 부채 해결에는 난항

LG화학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전력 직구의 바람이 불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LG화학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전력 직구의 바람이 불고 있다./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국내 산업계에 '전기 직구'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고 있다. LG화학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로부터 직접 전기를 구매하는 첫 대기업으로 나서면서, 전력 구매 방식에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면서 다른 대기업들도 잇따라 전력 직구를 추진 중이다.

◇산업용 요금 급등에 직구가 더 싸다

전력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 6월 말부터 여수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도매시장에서 전기를 직접 구매하고 있다. 대기업 중 전력 직구에 실제 돌입한 첫 사례다. 전력거래소 도매 가격으로 직구하는 전기 가격은 한전이 판매하는 산업용 전기보다 kWh(킬로와트시)당 약 30원가량 저렴하다. LG화학이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3867GWh)을 기준으로 하면 연간 1100억원가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셈이다.

전력 직구 제도는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기업들이 굳이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직접 구매할 유인이 없었다. 한전이 국제 연료비가 상승하더라도 요금 인상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은 급등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2022년 1분기 kWh당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올해 185.5원까지 치솟았다. 정부가 가정용 요금 대신 산업용 요금을 연이어 인상한 결과다.

여기에 전력망 확충이 필수인 새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기조가 산업용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산업계 전기 직구는 더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어드밴스드·세아베스틸 등 직구 대열 합류 검토

이 같은 추세는 대기업들 사이에서 '직구'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SK어드밴스드는 지난 3월 해당 제도를 최초 신청했고, 세아베스틸은 한화큐셀과 20년간 직접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솔루션도 제도 활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코레일 등 공기업도 제도 활용을 원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10곳 중 4곳(39.4%)이 전력 직구를 포함한 새로운 조달 방식을 검토 중이다. 직접구매 요건을 갖춘 대기업은 500여 곳에 달하며, 이들의 전력 소비는 전체의 약 29%를 차지한다. 확산 여지는 충분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한전이 중간에서 독점하는 시장 구조를 깨고 전력 직접 구매를 통해 전력 시장이 선진화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한전이 독점 공급자로서 모든 전력 소비자를 상대했던 소매시장이 시장경쟁체제로 돌입해 보다 투명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전, "우수고객 이탈"… 수익성 타격 우려

한전은 이번 흐름을 반길 수만은 없다. 산업용 고객은 전체 전기 판매 수입의 58%를 차지하는 '우수고객'이다. 이들이 도매시장으로 이탈할 경우, 수익성 악화는 물론 200조원이 넘는 부채 해소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실제 한전은 지난 4월 전력시장 운영규칙 개정 당시 전력 직구 제도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제도를 손봤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직접전력구매제도 정비를 위해 규칙을 개정하며 계약 최소 기간을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계약 해지 시 최대 9년간 재진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전력 구매 방식을 유리할 때만 바꾸는 ‘체리피킹’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한전 역시 현재 산업용 전력이 아닌 전력을 직구하는 기업에게 망 이용료를 부과하고 있으며, 관련 규정 정비를 준비 중이다.

업계는 산업용 대기업의 이탈 심화되면 중소기업과 가정용 전력요금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직접 구매는 가격 변동성이 높지만, 전력시장의 경쟁 구조를 만들고 시장 선진화 측면에서 필요하다"며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과 가계 부담을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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