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한미 협상단 '엄지척' 사진공개
"15% 동일 관세·대규모 투자" ···세부 전략은 '판이'

한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각 체결한 상호관세 유예 협정이 표면적으로는 15%라는 동일한 관세율과 대규모 대미 투자라는 공통분모를 보이고 있지만, 투자 규모와 전략 분야, 협상 조건 등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외견상 같지만, 한미FTA 사실상 붕괴로 "한국이 다소 손해"
한국, 일본, EU는 모두 기존 25~30% 추가 관세 위협을 15%로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총 대미 투자는 EU가 6000억달러, 일본이 5500억달러,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다. 세부 투자 구조와 전략 산업 선정에서는 각국의 경제적 특성과 대미 관계를 반영한 상이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런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유럽연합과 같은 수준의 관세율을 적용받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상대였던 한국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에 기본관세 10%를 모든 국가에 부과하기 전 한·미는 서로에게 평균 0%대 관세를 적용했다. 한국은 앞으로 15%를 상호관세로 내고 제품을 미국에 수출해야 하지만 한국은 미국산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자동차 관세에 대해서도 아쉬운 소리가 나온다. 한국 ·일본·EU에서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 15%의 관세가 부과된다. 외견상으로는 모두 같은 수치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FTA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0% 관세를, 일본과 EU는 2.5% 관세를 물었었다. 이제는 15%로 같아져 한국산의 ‘관세 우위’가 사라졌다. 상대적으로 한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에 '마이너스' 라는 분석이다.
◇투자 규모는 EU 최대, 실질 출자는 '미미'
투자 규모를 보면 EU가 6000억달러(2028년까지)로 가장 크고, 일본이 5500억달러, 한국이 3500억달러 순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현금 출자나 직접 투자 비중은 세 나라 모두 전체 약정액의 1~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경우 3500억달러 중 1500억달러가 조선업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에, 나머지 2000억달러가 반도체·배터리·원전·바이오 등 첨단 제조업 지원 펀드에 배정된다.
일본 역시 5500억달러 중 직접 출자는 10억달러 미만에 그치고 대부분이 정책금융을 통한 대출과 보증으로 구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세 나라 모두 국가 신용을 담보로 한 '대출·보증 펀드' 구조가 핵심"이라며 "실제 집행 내용과 투자 분야, 승인권 등 상당 부분이 미국 측 결정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전략 인프라', 한국은 '경쟁력 산업' 집중
투자 분야에서는 더욱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일본은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 사업에 미국과 합작벤처(JV)를 설립하고, 핵심광물 채굴·정제, 방위산업 등 미국의 전략적 정책과 직결된 인프라 개발에 깊숙이 참여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조선업과 반도체·배터리 등 자국 경쟁력 산업 중심의 투자에 집중했다. 특히 알래스카 프로젝트 관련해서는 LNG 구매 약속(1000억달러)은 포함됐지만, 일본과 달리 인프라 직접 개발이나 JV 설립 등의 구체적 합의는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EU는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 구매 약속과 함께 자동차·부품·의약품·반도체 등 광범위한 분야에 투자하되, 철강·알루미늄은 기존 50% 고율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농산물 분야에선 한국은 쌀과 소고기는 추가 개방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일본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에 전면적으로 응했다. 연간 8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와, 최소수입물량(MMA) 77만t 가운데 미국산 비중을 대폭 늘리는 안을 수용했다. 여기에 보잉 항공기 100대 구매,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 투자도 패키지로 담겼다.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 일본, EU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서 일단 숨통을 텄지만, 협상 세부사항을 놓고 한미 간 이견을 좁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화
전문가들은 이번 한·일·EU의 대미 관세 협정이 중국 중심 공급망 재편과 미국 우선주의(리쇼어링) 정책과 맞물려 글로벌 무역 질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미국 현지 생산 확대 압력을 받게 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환 속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25~30% 추가 관세 위협 하에 체결된 이번 협정들이 미국의 정책 변동성과 집행 재량권 때문에 불확실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협정으로 관세 폭탄은 일단 피했지만,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리 기업들의 안전망 확보와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