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약 9조달러(약 1경2000조원) 규모의 미국 퇴직연금 시장을 가상자산(암호화폐), 금,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 자산에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7월 1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 3명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조마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대표 퇴직연금제도인 401k 가입자들이 주식·채권 중심의 전통 자산 외에 가상자산, 귀금속, 사모펀드, 인프라펀드, 기업 인수·합병(M&A) 펀드, 사모대출 상품 등 다양한 대체자산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노동부와 재무부,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퇴직저축투자이사회(FRTIB) 등 유관 기관들이 남은 규제 개선을 위한 행정 절차를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401k는 미국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제도다. 1981년 도입돼 미국 증시의 상승과 함께 근로자들의 노후 생활자금 마련에 크게 기여해 왔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401k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은 최근 20년간(2001~2020년) 연평균 8.6%에 달했고, 매년 3조~4조달러에 달하는 신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한다. 즉, 이 자금들이 미국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고, 투자자와 시장 모두에 이익이 되는 '윈윈' 구조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미국 노동부는 지난 5월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마련된 '401k 가상자산 투자 지양 권고안'을 철회하며,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선 바 있는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정책 변화 기조를 본격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행정명령이 시행된다면 사모펀드 운용사들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블랙스톤, 아폴로,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일반 퇴직연금 투자자들의 자금을 대체투자에 유입시키는 것을 향후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고, 아폴로와 파트너스그룹은 미국 내 최대 401k 플랜 제공기관 중 하나인 엠파워(Empower)에 사모펀드 상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블랙록도 이미 401k 외부 수탁기관인 그레이트그레이 트러스트(Great Gray Trust)와 협업을 시작했다.
특히 행정명령은 노동부에 401k 플랜 운영자에 대한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 신설 검토를 요구할 계획인데, 이는 투자 대상이 공모주식처럼 투명하게 거래되지 않아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법적 책임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발행조건, 준비자산 요건, 공시 의무 등을 규정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통과 시켜서 사실상 제도권으로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화폐 생태계 편입을 시작했다. 이는 달러화 패권 수요와 미국채 수요 견인이라고 하는 자주 언급되는 이유 외에도 “ Digital 시대의 글로벌 금융시스템” 을 미국 중심의 On-Chain 구조로 재편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과 블럭체인 관련 산업을 전략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401k에서 가장자산을 포함한 투자 규제 완화 시도를 하는 것 역시 좁은 의미에서 퇴직연금 내에서의 규제완화 의미도 있지만, 미래 글로벌 경제/저축/자산관리 platform의 주도권을 확보하여 달러가 기본 기축 통화인 스마트폰 생태계를 구축려는 큰 그림 하에서 시도되는 규제 변화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퇴직연금 포트폴리오 운용 측면에서 만약 이번에 추진 중인 제도 완화가 시행된다면 암호화폐의 위상이 단순한 “투자 자산” 중 하나에서 “장기적 자산 배분의 대상” 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징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기관투자자들은 보다 명확한 제도와 규제 하에서 안정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고, 디지털 결제 관련 혁신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또한, 401k 가입자들은 훨씬 다양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기회와 책임이 동시에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 완화를 통해 전체 자본 시장에 추가적인 유동성이 공급되고, 사모펀드 등 운용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또한, 가상자산 외에도 금, 인프라 등 실물 및 대체 자산에 대한 투자 확대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규제 완화에 따른 잠재적 위험 및 관리 방안에 대한 고민과 제도 보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가상자산 특유의 높은 변동성이 안정성이 강조되는 퇴직연금 자산 보호 측면과 충돌하는 부분, 즉, 가상자산에 얼마나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문제, 그리고 투명성이 낮은 가상자산들에 대한 무분별한 접근 위험 차단, 연금Plan 제공자에 대한 법적 책임 회피 논란 가능성 등이다. 자산운용사들은 제도 변화에 따른 대체상품 개발에 나서겠지만, 이에 따라 퇴직연금 가입자들에 대한 고위험 자산 교육 강화가 필요하고, 정책당국은 감독관련 규제 및 시스템 정비를 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기존 법정화폐(Fiat-currency) 기반의 생태계와 암호화폐(Crypto-currency) 기반의 Token 생태계가 서로의 발전을 통해 연결되려 하고 있고, 이에 따른 산업 및 금융의 변화 가능성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상황이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의 경우에도 이미 2022년 “제1회 블록체인 리더스클럽” 행사에서 우리나라의 블럭체인 관련 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 업계 실무를 경험한 담당자들의 노하우와 경험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Safe Harbour) 도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적이 있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관련 제도의 준비가 많이 뒤쳐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스테이블 코인 제도화 및 401k 가상자산 투자 허용 등의 트랜드에 우리도 서둘러서 편승해야 하지 않냐고 언급하기 전에, 국내 퇴직연금 관련 제도에서 다양한 자산에 대한 포트폴리오 분산 투자를 통해 수익률 제고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고, 제도 개선 논의도 몇 년째 계속되고 있으나, 430조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에 비해 2% 수준에 머물고 있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