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전문가들의 지식·경험 어우러진 실용적 해양 교양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시작된 작은 온라인 스터디 모임이 어느덧 1030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내 해양계 최대 지식공유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바다. 저자와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모임의 네 번째 결실인 ‘바다, 저자와의 대화 4 (12인의 전문가가 들려주는 바다이야기)’가 2025년 3월 법문사에서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무엇보다 저자들의 깊이 있는 전문성과 현장감이다. 12명의 필자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20년 이상, 많게는 30년 이상을 바친 전문가들이다. 유창근 전 현대상선 사장의 정기선 시황 분석,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 박범진 경희대 교수의 해양안보 전략, 20년 이상 판사로 재직한 이성철 변호사의 해양범죄 해설 등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특히 유창근 회장이 해운업을 “사양산업”이 아닌 “기술혁신과 전략적 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재정의하며, 홍해 사태나 유럽연합(EU) 탄소세 도입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실무적 대응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현업 경험자만이 줄 수 있는 통찰을 만날 수 있다.
책의 구성도 체계적이다. 해운물류, 인공지능(AI)과 해운조선, 해양안보안전, 해양문화 해양인문학이라는 4개 부문으로 나눠 해양 산업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각 부문은 10페이지 분량의 간결한 글로 구성돼 있어 독자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210쪽이라는 적절한 분량도 몇 시간 안에 완독할 수 있게 해준다.
시의성 측면에서도 이 책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AI와 디지털 전환, 친환경 선박, 자율운항선박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들이 해양 산업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북극항로 개발, 해양안보 환경 변화 등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회와 도전도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김연빈 대표의 ‘국가전략이 없다’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국가전략 기획 기사를 재해석해 한국 사회의 국가전략 부재와 언론·정치권의 무기력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 글은 해양 산업을 넘어선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다양한 분야를 다루다 보니 각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다소 부족할 수 있고, 10페이지라는 제한된 분량으로는 복잡한 해양 산업의 이슈들을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또한 전문가들의 경험담 위주로 구성돼 있어 객관적인 데이터나 통계 분석이 부족한 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해양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실용적인 교양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해양 산업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는 기초적인 지식을, 해양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다른 분야에 대한 통섭적 이해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한국 해양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해양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 사고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만들어진 이 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돼 한국 해양 산업의 지적 토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